2004년 5월 어느 날 아침 7시, 평택의 한 빌라 반지하에서 나와 밝은 웃음으로 손을 내밀던 그를 처음 만났다.
당시 몸담던 언론사에서 ‘여성 초선의원 일기’ 시리즈를 시작했고, 가장 먼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첫발을 내디딘 심상정 의원의 하루를 밀착취재하게 된 것이다.
‘구로공단의 여걸’, 금속노조의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그였기에 ‘딱딱한 강성 이미지’를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그날 하루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그는 냉혹한 노동 현실에 거침없이 분노하면서도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공감하는 따뜻한 감성을 가졌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느라 초등학생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해 늘 미안해하던 엄마의 절절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슈퍼우먼이던 자신의 전철을 수많은 워킹맘들이 밟지 않도록 ‘슈퍼우먼방지법’을 이번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이후 13년 동안 진보정치를 힘겹게 일궈온 심 후보의 정치 역정을 내내 지켜봐 왔다. 그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권영길,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과 함께 후보경선을 펼쳤으나 권영길 의원에 밀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진보정의당 대선후보로 단독 출마했으나 야권단일화를 위해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공식 지지하며 눈물을 흘리며 사퇴해야 했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철탑 위에 매달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눈에 밟힌다"며 "단일화를 위한 중도사퇴는 제가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섰다. ‘저평가 우량주’라는 그의 진가를 국민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말로만 적폐청산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개혁, 재벌개혁, 일자리, 복지 등 국민의 삶을 바꾸기 위한 개혁 과제를 아주 디테일하게 정책에 담았다.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얼룩지는 이번 19대 대선에서 오로지 정책 대결로 승부를 거는 후보는 심상정 후보뿐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 열린 후보자 TV토론에서도 거침없는 논리와 언변으로 조목조목 정책을 따져 묻고, 때로는 네거티브로 일관하는 후보자를 맥도 못 추게 면박을 줬다. 국민들은 TV토론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심 후보를 보면서 “똑 부러진다. 속이 시원하다”, “원칙과 상식이 돋보인다. 유치한 말장난 토론에 그나마 격을 높인 후보”라는 찬사를 쏟아낸다.
지난 총선 때 수도권 최다 득표를 얻은 그의 지역구에선 일찍부터 ‘심알찍’이라는 유행어가 돈다고 한다. “심상정을 알면 심상정을 찍는다”는 말이다.
구로디지털 공단의 젊은 IT노동자들이, 취업준비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청년들이 엄마 같은 심 후보의 가슴에 안겨 펑펑 우는 영상들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이 찡해왔다.
그는 말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느냐, 그것이 진보와 기득권 세력의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그 마음은 동정심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입니다. 나 또한 그런 인간이고, 그것에 공동의 책임을 느끼는 것, 그런 이해가 없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라고.
25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 외길을 걸어온 심 후보가 헤쳐 나갈 진보진영의 힘겨운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온 그의 희생과 진정성은 진보정치의 가치와 함께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다.
30년 재벌 위주의 성장으로 산업화 시대를 거쳐온 대한민국이 노동과 복지, 성장이 선순환되는 복지선진국가로 나아가는 데 진보정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첫 시험대는 심 후보가 진보정당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이번 대선을 완주하는 것이다. 그의 분투를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