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항상 기억해야하는 역사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다룬 문화콘텐츠 역시 많은 관심을 받고는 하는데, 재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암살>과 작년에 개봉한 영화 <밀정>이 연달아 흥행하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장렬히 목숨을 바쳐 희생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독립운동 영화에 빠지지 않고 배경처럼 등장하는 단체가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상해에 수립됐다. 당시 국내는 일제의 치밀한 감시로 인해 제대로 된 독립운동 활동이 어려웠기에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깝고, 동시에 프랑스 조차지에 위치해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있었던 상해가 임시정부 수립지로 낙점됐다. 그 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광저우, 충칭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최초에 수립됐던 상해의 임시정부가 가장 대표적인 임시정부로 알려져 있다.
3·1운동은 국내외 2,000만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독립운동이 아닌 국가차원의 독립투쟁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켰고, 각지의 독립운동가에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일제의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우리 민족의 온전한 국권회복과 한반도 내외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화정 체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3·1운동 직후에는 국내외에 6개 이상의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는데, 헌법, 의회, 서고문, 정강, 강령 등을 갖추고 실직적인 정부의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곳은 상해, 한성, 연해주에 설립된 임시정부만이 유일했다. 그리고 이들은 1919년 9월 11일 상해에서 통합임시정부를 구성하게 되는데, 그 정부가 1945년까지 이어져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내내 다양한 외교활동, 군사 활동을 비롯하여 독립운동 자금 마련과 동시에 민족교육과 독립신문 발행, 사료 편찬소 설치 등 문화적 활동도 진행하며 다방면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이러한 임시정부의 다양한 활동은 우리의 자주권을 꾸준히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희망을 심어주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내밀한 역사적 사실까지 알기는 어려워도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일제의 억압을 피해 독립운동을 해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 임시정부는 체계적인 독립과 자주권 수호를 위한 구심점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다가오는 4월 13일은 그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다.
98년전 오로지 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전 재산과 목숨을 내어 놓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를 항상 기억하며 이번 4월 13일은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