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고상한 척을 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봅시다. 고대 시가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며 이런 시구를 떠올릴 거예요. ‘낙하여고목제비(落霞與孤鶩齊飛)요,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이구나(저녁 노을은 외로운 물오리와 함께 날고, 가을철 강물은 먼 하늘과 한 빛깔로 맞닿았다,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 예전처럼 그냥 ‘와우, 새들 겁나 많네, 진짜 멋지다!’ 라고 말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공유되며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대화 한 토막이다. 발단은 최근 중국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예능프로그램 <중국 시(詩)·사(詞)열전(中國詩詞大會)>에서 비롯됐다. 흔한 리얼리티 예능이나 인기 연예인이 등장하는 예능과 달리, 중국의 고대 시와 사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해도를 겨루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에 대한 특별한 직업이나 학력 기준은 없다. 명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교수나 학생은 물론 석유화학 공장에서 일하는 여직공, 농민 등 일반인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다.
무엇보다 텔레비전 시청률이 점점 낮아지는 요즘 첫 방송 이후 시청률이 ‘수직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참가자들의 풍부한 지식에 감탄하면서 중국 전통문화의 방대함을 느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고대 시가를 암송하려는 열풍까지 불고 있다.
2월 7일 밤 8시에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제작 프로그램 <중국 시·사열전>의 결승전이 열렸다. 장장 90분에 걸친 치열한 경쟁 끝에 16세에 불과한 중학생 우이수(武亦姝) 양이 쟁쟁한 고수들을 물리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그램 중에는 3600m2 크기의 수상 무대 위에 시청자들이 고대 시에 담긴 멋과 인생을 음미해볼 수 있는 공연이 펼쳐졌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아름다운 물보라가 눈부시게 쏟아지며 시와 그림에 담긴 운치를 그려냈다. 시청자들은 새롭게 추가된 실시간 참여 방식을 통해 함께 퀴즈를 풀며 치열한 현장 분위기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빅데이터분석업체 쿠윈왕(酷雲網)에 따르면 2월 7일 <중국 시·사열전> 결승전의 시청률은 15.9%를 기록, 1위를 차지했다. 랭킹 2위와도 시청률에서 무려 5%p 차이가 난다. 지난 2개월 간 누적 시청자 수는 11억6300만명에 달했다.
‘앎’에 대한 갈증 해소
<중국 시·사열전>이 첫 방송되기 전인 2015년과 2016년 사이, CCTV는 <중국 퀴즈열전>, <중국 사자성어열전>, <중국 한자받아쓰기열전> 등 여러 교양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중국 시·사열전>의 첫 방송 때는 이미 헤이룽장(黑龍江)위성TV에서 제작한 교양예능 <견자여면(見字如面)>이 방영 중이었다. ‘서한을 통해 과거 역사와 문화를 펼쳐본다’는 콘셉트를 지닌 이 프로그램은 각종 무대 공연이나 일반인 참가자들 없이 유명 전문가를 초청해 역사적 인물 간의 서한을 낭독하고, 패널과 시청자들이 돌아가며 이에 얽힌 스토리를 간략히 설명하는 식이었다. 주로 글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차분하고 독보적인 매력을 발산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프로그램마다 시·사, 사자성어, 한자, 서한 등 콘텐츠는 다르지만, 모두가 ‘유구한 중화 문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하는 면이 있다. 수천 년에 걸친 역사의 변천 과정 속에서 중국인들의 ‘문화적 뚝심’은 언제나 존재해 왔지만, 이제 이것을 본격적으로 끄집어낼 때라고 본다.” 중앙민족대학교 역사문화대학 멍만(蒙曼) 부교수의 말이다. 최근 교양형 예능의 인기는 중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 욕구가 표출된 것이란 해석이다. 과거 ‘나홀로 고상한’ 전통문화가 상투적인 이론 전달에 그쳤다면, 이제는 오락 프로그램의 포맷을 입히고 문화 콘텐츠와 결합하여 시청자와의 거리를 없애고 ‘앎’에 대한 일반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분석해 보면, <중국 시·사열전>과 같은 교양 예능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비단 이것이 브라운관 앞에서 펼쳐지는 퀴즈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나 사, 사자성어 등 중국의 전통문화는 애초부터 중국인들의 문화심리적 구조를 만든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만 끄집어내도 쉽게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둥칭(董卿)은 “내게는 프로그램의 내용 자체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회를 맡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배움의 과정이다. 단순히 시와 사뿐만 아니라 ‘올바른 사람됨’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관심이 관건
<중국 시·사열전>과 같은 교양 예능이 큰 인기를 끌자 교육 일선에 있는 국어 교사들과 대학의 연구자들도 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관련 프로그램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저마다의 기대와 우려가 섞인 목소리를 냈다.
“중·고등학생 참가자들이 상위권에 오르는 것을 보며 프로그램이 중·고등학생들의 고대 시 공부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시즌2를 마친 <중국 시·사열전>에 대한 중국 푸단(復旦)대학교 부속중·고교 고급반 국어교사 스바오펑(司保峰)의 평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시에 담긴 아름다움을 느끼리라고 본다”며 “학생들이 진솔한 감정, 아름다운 정경, 지고지순의 선(善) 등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고시(古詩)의 아름다움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매년 ‘고대 시·사 감상’과 같은 선택과목을 강의하는 교사로서 약간의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교사나 학부모가 고대 시문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결국 시험과 스펙만을 위한 공부가 될 것이며, 아이들이 시와 사를 억지로 외우도록 강요함으로써 학업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푸단대학교 중문과 허우톄젠(侯體健) 부교수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고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높이고 거리감을 좁히는 데 분명 좋은 역할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역할이 얼마나 갈지,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역할을 발휘할지는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허우 부교수는 과거 중국 사회에는 잊을 만하면 전통문화 열풍이 한 번씩 불었다가 또 금세 잦아들었다면서, 고대 시가를 비롯한 전통문화에 대한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관심을 갖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누군가 고대 시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조금 아쉽긴 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삶 속에 ‘멋’조차 없다면, 아마 평생에 걸쳐서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고취시킬까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국의 교육 관련 부처도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새로 개정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교과서가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새 교과서에는 우수한 중국 전통문화에 관한 본문 비중이 크게 늘었다. 1학년에서 6학년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전통문화 관련 본문은 약 30%를 차지한다. 7학년에서 9학년은 약 40%다. 각 교과서별로 14~15편의 고대 시가도 소개되어 있다. 각 대학에는 교양 국학반이 잇따라 개설되고 있다. 교육부에서는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 문제의 점수 비중을 한층 높이는 개혁안도 모색하는 등 일상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