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수희 조아라 대표 "전 국민의 작가화 위해 창작 문턱 낮춰"

2017-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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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조아라 대표는 "웹소설은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며 "지친 현대인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콩나물 시루라고 해도 무방한 출근길 지하철. 40대 직장인 A씨는 재킷 안쪽에서 힘겹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무언가 읽기 시작한다. "오오~" "음".  한 발짝, 아니 반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좁디좁은 공간이지만 그는 손바닥만한 액정을 들여다보며 몰입한다. 그가 즐기고 있는 것은 천사와 악마의 대리전쟁에 휩쓸려 강제적으로 생존게임을 치르게 된 주인공을 다룬 퓨전판타지 웹소설 '메모라이즈'. 9시간 후 또 다시 '지옥철'을 타야 할 그이지만 이 소설을 이어 읽을 생각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90년대 중반 PC통신의 등장과 함께 선보인 웹소설은 2009년부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이처럼 자투리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3년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웹소설에 뛰어들며 시장이 크게 확대됐고, 이듬해 카카오페이지도 웹소설을 강화하며 웹소설 시장은 만개했다. 
2016년 기준으로 웹소설 시장 규모는 1300억여 원으로까지 성장했다. 웹소설이 앞으로도 폭발적인 성장세를 유지할지, 아니면 정체나 위축의 길을 가게 될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갈수록 팍팍한 세상살이에 자신만의 탈출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중들이 늘어남에 따라 웹소설 등의 '쉽고 재미있는 텍스트'는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조아라(대표 이수희)는 지난 2000년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웹소설 연재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특히 출판시장을 거치지 않고 누구나 온라인 상에 작품을 올리고 독자가 즉시 읽을 수 있는 획기적 개념의 플랫폼으로 주목을 받았다. 

18년이 지난 지금 조아라에는 작가 15만 명, 작품 46만 종이 연재되고 있으며, 매일 2600편의 신작이 등록되고 있다. 회원수도 115만 명을 넘어섰으며, 하루 29만 명의 독자가 이곳을 방문해 947만 건의 웹소설을 탐닉하고 있다. 

◆ 미래 지향적인 웹소설…"지친 현대인에게 필요한 처방전"

이수희 대표는 "'웹소설'이라는 용어 자체에 살짝 불만이 있다"고 입을 뗐다. 이 대표는 "예전부터 '장르소설' '인터넷소설' '대중소설' 등으로 불리다가 네이버가 '웹소설'이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렀다"며 "지금은 웹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다양한 모바일 디바이스로 작품을 보기 때문에 새롭고 더 적확한 용어가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과거 '웹노블'로 상표권 등록까지 했던 그이기에 용어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이 일견 이해됐다. 

이 대표의 정의에 따르면, 웹소설은 문학성을 담보하진 않지만 재미·흥미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콘텐츠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웹소설을 '라이트 노블'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해리포터' 시리즈도 조금 더 넓게 해석하면 이 범주 안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 유행하는 웹소설은 외국의 그것과 약간 다른 특성을 지닌다"며 "쉽게 말해, 사회·정서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인들이 일탈, 해방, 대리만족 등을 주제로 한 소설에 매료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긴 괴수가 출몰하거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진 곳에서 영웅이 등장해 극적인 활극을 벌이거나, 이승과 저승 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를 겪는 일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조아라는 여느 웹소설 플랫폼과 달리 '이슈 양성소'라는 별칭이 달릴 정도로 '핫'하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출범 당시만 해도 웹소설 대부분은 각 회사 운영진들의 심사를 받았고, 연재가 된다고 해도 독자들이 읽기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며 "우리는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법에 저촉되는 부분 등이 아니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올리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조아라는 18년간 글을 쓰고 이를 올리는 데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다. 조아라가 '신인작가 등용문' '웹소설계의 수원(水源)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이 대표는 "회사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전 국민의 작가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런 원칙을 고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항간에는 '그게 무슨 소설이야'라고 웹소설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떠돈다. 웹소설을 기존의 순수문학과 구분 짓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런 시각에 대해 "각자 영역에서 나름대로 추구하는 게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면서도 "함축적이고 난해한 표현, 긴 호흡과 많은 권수 등으로 순수문학은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 현대인들은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들에게 어렵고 복잡한 걸 요구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작품 소화의 양극화' 가능성도 지적했다.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더 '무거운' 작품도 읽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것들과 점점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웹소설은 문화저변 확대에도 기여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대표는 "사람들은 '내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에 주목하는데, 웹소설은 거기에 꼭 맞는 처방전"이라며 "기존 소설들이 과거와 현재에 초점을 둔다면, 웹소설은 미래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외계로 어떻게 나갈지, 괴생명체들의 침입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의 내용은 재미와 더불어 미래를 내다보는 힘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수희 조아라 대표. 그는 "피규어 수집을 '덕후' 수준으로 한다"며 웃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 "누구나 작가 될 수 있어야"…확실한 작가후원정책 '눈길'

조아라는 판타지, 패러디, 로맨스, 퓨전, BL(Boy's love)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누적 기준 장르 분포도를 보면, 이 가운데 판타지 소설이 32%, 패러디 작품이 25%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대표는 "로맨스 소설도 사실 '로맨스판타지'로 분류할 정로도 판타지 장르가 대세를 이룬다"며 "이는 일탈, 자기만족 등 현실에서 쉽게 이룰 수 없는 욕구가 작품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학생은 돈 벌기, 30대는 사회적 성공, 40대 이상은 고리타분한 세상에서의 해방 등을 바라는데, 이런 바람을 웹소설을 통해 해소·승화한다는 말이다.

이어 그는 "최근엔 현실을 기반으로 한 몬스터 출몰, 지구의 종말, 인류의 위협 등의 주제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 학교·사회에서 자신이 이른바 '아웃사이더' '왕따'라고 할지라도 작품 안의 세계에선 영웅이 되는 걸 바란다. 여성도 평소엔 조용하고 신중한 사람이지만, 작품에선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조아라는 최근 대규모 투자 유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몇몇 기관투자사는 이 대표를 직접 찾아오기도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것은 없다"며 "내가 생각하는 사업 방식과 투자자들의 그것에 차이가 조금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는 목적은 자본 수급과 상장 등의 문제일 텐데, 조아라는 투자를 시급히 받아야 할 이유는 사실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투자를 받는다면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잘 맞는 곳과 하고 싶다"면서도 "글로벌 서비스, 캐릭터 사업, 게임 제작, 웹툰, 영화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인데 현재로서는 투자가 솔직히 큰 매력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2014년 72억 원, 2015년 125억 원 그리고 지난해 162억 원. 조아라의 최근 성장세를 보여주는 수치(매출)다. 대기업들의 전방위 영업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상승 곡선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 있을까. 이 대표는 "특별한 경영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후원정책, 신진작가 기회 제공 이 두 가지는 확실하게 해 왔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표적인 것이 '120-100 프로젝트'다. 이는 매달 상위 120명의 작가에게 100만 원의 수익을 보전해주는 것으로, 예를 들어 월 70만 원의 수익을 올린 작가가 있다면 그에게 30만 원을 지급해주는 식이다.

이 대표는 "웹소설 작가는 인기작가와 신진작가의 수입 차가 워낙 커, 상위 1%의 경우 10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지만 작가 대부분은 100만 원도 채 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더 많은 이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을 덜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4년 10월 첫 시행한 이래 5회째 진행하고 있는 공모전 '노블레스 신규작품 77 페스티벌'도 눈길을 끈다. 신진작가가 조아라 유료소설 카테고리에 77일간 작품을 연재하면, 매달 독자 조회수, 추천수, 평점, 선호작수, 작품 용량 등을 반영한 베스트지수에 따라 정산을 받게 되고 공모전이 끝난 후에는 7명의 수상자에게 총 3200만 원의 상금과 전자책 출판 기회, 조아라 내 배너 광고 등을 지원 받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웹소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소위 '뜨는 작품'들의 절반은 처녀작입니다. 기성 작가들은 이미 굳어버린 틀에 갇혀 새로운 관점과 설정을 잘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맞춤법, 작품성 등에 구애받지 말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할 만합니다. 조아라가 일부 독자들에게 '쓰레기 양산소'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품의 60~70%는 조아라를 통해 소개된 것들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조아라에 와서 마음껏 끄적이세요."

아무래도 그의 꿈은 '전 국민의 작가화'가 아니라 '전 우주인의 작가화'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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