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웨이보(魏博) 기자 =“나는 메이리(梅里)설산의 아들이다. 신산(神山)에 대한 사랑을 멈춰본 적이 없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신성한 카와거보(卡瓦格博)봉을 바라보면 기분이 풀린다. 메이리설산은 내 생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다.” 54세인 아니가(阿尼嘎)는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짱(藏)족자치주 더친(德欽)현에 사는 짱족 농민으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메이리설산 아래서 살았다.
구지(谷幾)촌은 다섯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로 한때 아니가의 유일한 생활권이었다. 수년 전까지 산에 기대 먹고 살았던 농민들은 빠듯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 아니가는 쑹찬메이리(松贊梅里)호텔의 정직원으로 매달 3000위안(약 52만원)의 안정적인 수입 덕분에 삶이 180도로 바뀌었고 세계 각지의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카와거보 산꼭대기에 새벽 첫 햇살이 비추면 아니가는 하루의 ‘SNS 라이프’를 시작한다. 5년 동안 그는 휴대전화로 메이리설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찍었다. 햇빛에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으로 포착하여 멀리 있는 친구들과 공유했다.
아니가는 어렸을 때부터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쑹찬메이리호텔에서 일한 지난 7년 동안 해마다 관광객을 이끌고 더친현에 있는 바이마(白馬)설산으로 10여 차례씩 트레킹을 떠났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SNS 친구가 늘어났다.
트레킹을 갈 때마다 아니가는 길에서 본 것들을 사진에 담아 자신의 느낌을 위챗(微信, 모바일 메신저) 모멘트에 올린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메이리설산은 아니가의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을 만들었고 순박하고 선량한 마음씨를 갖게해주었다. 그는 자기 일을 사랑한다. 그는 자기 집으로 여행객을 자주 초대해 쑤유차(酥油茶)를 대접한다. 한번은 트레킹 도중 여행객 한 명이 갑자기 고산병이 심해져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자기보다 무거운 여행객을 업고 차까지 되돌아왔다.
아니가는 날마다 신산의 찬란한 빛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전산은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과목이 됐다. 손에 전경통(轉經筒)을 들고 고개를 들어 신성한 봉우리를 보면서 만년 빙하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아니가의 표정은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