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성환 기자 =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가파르다. 올해 들어서만 무려 70원이나 주저앉았다. 향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율 압박이 거세질 경우 낙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벌써부터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서만 70원 가깝게 하락하며 작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특히 원화절상(환율 하락) 속도가 다른 신흥국 통화 중에서도 빠른 모습이다.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연초 이후 달러 대비 절상률을 조사한 결과, 원화가치는 4.87% 상승했다. 이는 신흥국으로 분류된 22개 국가 중 폴란드(5.12%)에 이어 두 번째다. 대만(3.84%), 태국(2%), 말레이시아(1.55%), 인도(1.42%), 중국(1.36%), 인도네시아(0.91%)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이날 역시 원·달러 환율은 전거래일 종가보다 1.9원 내린 달러당 1136.0원으로 장을 출발했다. 다만 프렉시트(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 우려 등 유럽연합(EU)의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다시 1140원대로 올라섰다. 하지만 달러 약세 흐름이 잡힌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원·달러 환율 하락세를 부추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환율조작국 발언이다. 트럼프 정부가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인 중국, 일본, 독일을 꼬집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로 달러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제약사 임원들과 만나 "중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일본이 수년간 무슨 짓을 해왔는지 보라"며 "이들 국가는 시장을 조작했고 우리는 얼간이처럼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시점이 불투명하다는 점도 원·달러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환율의 방향성을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는 달러 약세 요인이지만 재정확대 정책은 달러 강세 요인이다. 따라서 오는 4월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하기 전까지 달러 약세 흐름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수출비중이 높은 국가의 환율정책을 비판하고 있고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지연될 것이란 전망으로 달러화 상승 모멘텀이 상실했다"면서 "또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에도 외국인 자금이 주식, 채권시장에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점도 하락 압력에 일조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환율조작국 이슈는 당분간 원화의 강세 분위기를 연장시킬 것이다"면서 "따라서 당분간 달러화 약세 기조가 계속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환율 리스크가 커지면서 모처럼 반등한 우리나라 수출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수출은 작년 같은 때보다 11.2% 늘어난 403억 달러를 기록하며 2013년 1월 이후 4년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환율 하락세가 지속되면 수출 회복세가 꺾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비중이 84.8%에 달하는 만큼 환율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 경제 성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