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유진희 기자 = "회사측의 사후조치가 미흡했을 뿐 아니라 나를 마치 '블랙컨슈머' 취급하는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최근 기자와 첫 통화를 할 당시 김모(38.남)씨의 목소리는 무척 격앙돼 있었다. 쿠첸 측이 제품 회수에만 급급하면서 자신의 피해보상과 사후예방 조치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특히 그를 마치 ‘블랙컨슈머’ 취급한다는 데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하순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던 쿠첸 전기밥솥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김씨의 빠른 조치로 큰 불행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신고한 김씨에 대해 쿠첸의 대응은 냉정했다. 적어도 김씨가 느끼기엔 그랬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확한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관련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불안해 떨고 있다는 점이다.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저서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1931년)>에서 ‘하인리히 법칙’을 소개했다. 대형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어떤 상황에서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대처해야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법칙대로라면 쿠첸 측이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매뉴얼’이 아니라 ‘하인리히 법칙’이 아닐까 싶다. 전문가들도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피해보상과 원인규명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단 사고 제품을 소방과학연구원 등 제3기관에 맡겨 투명하게 원인을 밝히고, 이와 별개로 쿠첸 측은 소비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보상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쿠첸은 중국 등을 중심으로 수출을 활발히 하며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성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위기에 잘 대응해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잊으면 하인리히 법칙의 경고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