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미약품의 8조원대 기술수출 '잭팟' 이후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1년 만에 와장창 깨지며 발생한 일이다. 한미약품이 같은 해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맺었던 8500억원 규모의 폐암 신약 기술수출이 지난해 9월 실패로 끝난 게 시작이다. 여기에 '늑장공시' 논란까지 겹쳤다. 이후 한미약품뿐 아니라 모든 제약·바이오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졌다.
하지만 제약·바이오는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헬스케어 시장조사업체인 미국 퀸타일즈IMS연구소의 '2021년까지 세계 의약품시장 전망' 보고서를 보면 의약품 시장은 2014~2015년 사이 매년 9% 가까이 급성장했다. 이후에도 연평균 4~7%씩 증가할 전망이다.
2016년 1조1300억 달러(약 1329조원) 수준이던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1년 1조5000억 달러(1764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2010년 이후 19조원대 수준으로 정체된 국내 시장과 달리 수출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6년 제약·바이오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15.2% 증가한 33억9000만 달러(3조9900억원)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17.3% 늘어난 39억7000만 달러(4조67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미국과 유럽 시판 허가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개량신약의 중국·인도 등 파머징(제약 신흥시장) 국가로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돼서다.
정부도 힘을 보태고 있다. 정부는 지난 17일 '제4차 바이오특별위원회'를 열고 바이오의약품 평가기술과 심사지침 개발에 앞으로 10년간 982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관련 심사관 채용 확대를 통해 바이오의약품의 신속한 허가심사도 지원한다. 토종 백신의 세계보건기구(WHO) 사전적격심사(PQ) 인증 확대에도 나선다. PQ는 WHO가 백신의 품질·안전성·유효성 등을 심사하는 제도로, 국제기구 조달시장 입찰 때 필수적인 인증이다.
다만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은 긴 호흡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신약 개발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다. 신약 1개를 개발하는 데는 10년가량이 소요된다.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총 1조원 정도를 들여야 신약을 만들 수 있다.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고 인체에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많은 시간이 걸려서다.
신약 개발에 필수적인 임상시험은 5단계로 이뤄진다. 사람에 앞서 실험용 쥐 등 동물을 대상으로 약효 등을 알아보는 전임상시험이 성공하면 건강한 성인 20~80명을 대상으로 제품의 안전성 등을 알아보는 1상 임상에 들어간다. 1상에 마쳐야 비로소 실제 환자에 대한 임상이 가능해진다.
환자 대상의 첫 임상 단계인 2상에선 신약 후보물질이 치료 효과를 보이는 병을 가진 환자 100~200명을 대상으로 제품 적응증(효능·효과)과 치료에 적합한 투약 용량을 알아본다. 이어 3상에선 환자 1000명 이상에게 투약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관찰한다. 보통 3상을 마치면 보건당국의 시판 승인을 받아 신약이 시장에 나온다. 4상은 출시 후 5년간 실제 제품을 사용한 환자 수천명을 대상으로 부작용은 없는지를 살피는 단계다.
제약·바이오산업은 내수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과도한 기대나 성공에 대한 조바심, 성급한 실망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냉정한 평가와 함께 차분한 기다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