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소비, 투자, 수출이라는 세 가지 성장 기둥이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국내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와 민간경제연구소의 수장들이 이구동성으로 새해 벽두부터 한국경제호(號)에 경계령을 내렸다. 이들의 말대로 2017년 전망은 매우 어둡다. 불확실성을 넘어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를 증명하는 신호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대한상의가 발표한 '2017년 1분기 BSI(기업경기실사지수)'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향후 경제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고 투자를 줄일 것이고 소비와 수출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업자수도 1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실업자 통계 기준이 바뀐 20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9.8%로 2015년 9.2%에 이어 역대 최고치를 1년 만에 경신했다.
이 뿐인가.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재계 서열 1~3위 기업마저 흔들리고 있다.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했다. 이 부회장이 수사기관의 피의자 조사를 받은 건 9년여 만이다. 이 부회장이 사법처리될 경우 삼성그룹에 미칠 파장은 메가톤 급이다. 신성장동력 사업 진출과 이와 관련된 인수합병(M&A) 작업은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해 국내외에서 788만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줄곧 성장새를 이어온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꺾인 것이다.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1998년 이후 18년 만이다.
대기업 중 그나마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한 SK그룹마저 최근 특검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11일 향후 3년에 걸쳐 11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는 올해 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고, SK하이닉스도 6~7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검팀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8월 사면되는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SK의 투자계획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극히 불투명해졌다.
대규모 투자와 고용으로 한국 경제를 견인해 온 대기업들이 이대로 주저앉는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대외적으로도 중국 경기 부진과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대통령 탄핵정국과 구조조정 실패 등의 암초도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사기마저 떨어지면 경제 활력은 급전직하가 불가피하다. 최근 경영 환경을 사상 초유라고들 한다. 기업이 한방에 훅 갈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위기에서도 성장을 지속해왔다. 남보다 한발 빠른 움직임과 한 걸음 더 멀리 미래를 내다본 덕분이다. 연초 재계 수장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변화와 혁신을 한 목소리로 주문한 것도 다르지 않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새해 희망을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기본부터 바로 세우고 새로운 것을 치밀하게 준비해서 시작한다면 어떤 힘든 파고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60년만에 찾아온 붉은 닭의 기운을 받아 기업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단계 더 비상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 경제가 산다.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