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증권사 간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전망으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차츰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출 것이란 기대가 크다. 다만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어, 부익부 빈익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증권사들의 몸집 불리기…급격한 순위 변동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초대형IB가 되려는 대형 증권사들이 자기자본을 대거 확충하면서, 올해 업계 순위변동이 불가피해졌다.
가장 최근 자기자본을 늘리기로 결정한 곳은 통합 KB증권이다. KB증권으로 새출발하는 현대증권은 지난해 12월 30일 180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작년 9월 공시한 분기보고서 기준으로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의 자기자본 합계는 3조9500억원으로, 유상증자까지 반영되면 통합 KB증권의 자기자본은 4조원을 훌쩍 넘는다.
삼성증권도 지난해 12월 20일 354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유상증자를 통해 삼성증권의 자기자본은 4조원대에 달하게 된다.
11월에는 메리츠종금증권이 메리츠금융지주에서 보유한 메리츠캐피탈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자기자본을 2조2000억원까지 늘렸다.
한국투자증권도 덩치 키우기에 적극적이다. 역시 11월 모기업인 한국금융지주는 2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 자기자본 확충에 사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은 가장 급격하게 규모를 키운 증권사다. 이에 따라 자기자본 규모를 기준으로 한 업계 순위도 재편됐다.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곳은 NH투자증권(4조5000억원) 한 곳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미래에셋대우가 자기자본 6조7000억원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섰다.
자연스럽게 NH투자증권(4조5000억원)은 2위로 내려앉았다. 이어 삼성증권(4조1000억원), KB증권(4조1000억원), 한국투자증권(4조200억원)이 '빅5'에 이름을 올렸다.
◆너도나도 사업영역 확장…초대형IB 경쟁 후끈
이처럼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린 이유는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금융위원회가 초대형IB 육성 방안을 내놓으면서 자기자본 규모(3조·4조·8조원)에 따라 각종 투자사업을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3조원 이상 증권사는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중개업무, 정책금융기관 등을 활용한 해외진출이 가능하다. 4조원 이상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200% 한도에서 1년 이내의 어음을 발행할 수 있고, 기업 외환 매매 업무를 영위할 수 있게 된다.
8조원 이상이면 종합투자계좌(IMA) 운용, 부동산 담보신탁 업무도 가능하다. 국내 증권사들은 일본 노무라(28조1000억원), 중국 중신증권(25조6000억원) 등 아시아 대표 증권사보다 자본규모가 미흡해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그동안 국내 증권사들은 거래대금에 기반한 위탁매매 중심의 사업구조를 갖춘 반면, IB 본연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위축됐었던 게 사실이다. 또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사업구조의 다변화가 절실해졌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위탁매매부문 순영업수익은 2015년 2분기 이후 하락세로 전환했고, 지난해 1분기엔 전년 동기 대비 4.6%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증권사 순영업수익에서 위탁매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43%에 이른다.
◆기업금융 강화 기대...부익부 빈익빈 우려
이처럼 초대형IB 경쟁을 통해 대형 증권사들의 기업금융 기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김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형사들이 발행 어음과 IMA를 통해 기업 대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신용공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 완화로 투자 여력도 증가될 것"이라며 "증권사의 기업금융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사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중소형사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특화서비스를 강화할 것"이라며 "대형사로 진입하기 위한 중소형사간 M&A도 활발해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초대형IB에 대한 인센티브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으며, 극히 일부 증권사에만 과도한 혜택이 주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박혜진 교보증권 연구원은 "조달 측면에서 보면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는 만기 1년 이내의 어음 발행을 할 수 있지만, 현재 대부분 증권사가 전자단기사채를 활용하고 있다"며 "신용등급이 높은 대형사는 2% 초반대의 채권 발행이 가능해 실효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본 여력이 낮은 소형사는 라이선스를 일부 반납하거나 특화영역에 집중하면서 생존방식을 찾아야 할 처지가 됐다"며 "자기자본 규모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