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예탁결제원 낙하산 인사 되풀이 유감

아주경제 김정호 기자=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같은 종인 생물이 섬마다 미세하게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본래 같았던 종이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제각각 진화한 것이다. 다양성이 전체 생태계 생존력을 높였고 종의 보존을 넘어 진화를 이뤄낸 것이다. 반대로 획일성은 조직의 진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최근 사장 인선을 서두르고 있다. 대개 예탁결제원 사장 인선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가 경쟁해왔다. 한참 전에는 예탁원 사장 자리에 기재부 출신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금융위에서 오는 사례가 많았다.

이번에는 이병래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예탁원 사장으로 내정됐다. 단수 후보로 추천돼 이사회 의결과 금융위원장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이 위원의 사장 임명 가능성을 놓고 “임명까지 두 번의 절차가 남아 있어 끝까지 두고 봐야 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차기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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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업계에서는 최순실 게이트 탓에 기존 관행과 달리 민간 출신이 물망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전직 관료들이 최순실 게이트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예탁결제원 사장은 다른 금융기관 수장직에 비해 연봉이 낮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변화는 없었다. 갈라파고스 사례에서 보듯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조직의 진화를 이끌 가능성이 크다.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는 용어가 있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폴 데이비드, 브라이언 아서 교수가 주창한 개념이다. 한 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관성을 가리킨다.

지난달 초 유재훈 전 예탁결제원 사장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회계감사국장으로 선임되면서 남은 임기를 마치지 않고 물러났다. 경영공백 우려로 비판이 제기됐지만, 그는 이런 시선을 괘념치 않았다. 조직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나 충성심은 찾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비효율의 폐해라 할 만하다.

새 사장의 어깨가 무겁다. 임기 시작 전부터 이런 편견 아닌 편견과 싸워야 하니 말이다. 기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만한 행보를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