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야 3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이 각각 마련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핵심은 ‘제3자 뇌물 공여죄’(형법 제130조) 적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을 통한 대기업의 강제모금 및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헌법상 부여한 대통령 권한 지위 등을 남용한 대표적인 사례인 데다, 향후 검찰 및 특별검사(특검) 수사로 드러날 구체적 뇌물죄 입증을 사전에 대비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헌법학계 내부에서도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대통령 행위 이상의 뇌물죄를 탄핵 소추안에 적시할 경우 법리적 입증을 둘러싼 시간 지연으로 헌재 판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헌법 탄핵 사유에 형사법적인 사유를 적시할 실익이 적다는 얘기다.
민주당의 탄핵안 초안은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를 비롯해 강요죄, 직권남용 등이 핵심이다. 탄핵안 초안 작성을 맡은 금태섭 의원은 28일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 입증할 수 있는 명백하다고 보이는 부분만 포함했다”며 밝혔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제3자 뇌물죄 적시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다만 국민의당은 삼성의 삼성물산 합병 관련 국민연금과의 커넥션 부분은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탄핵추진단장인 김관영 의원은 이와 관련해 “심리에서 증거자료, 입증 문제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적시 부분은 롯데와 SK 면세점 사업 인허가 개입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수뢰죄’(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요구·약속으로 성립하는 범죄)의 일종인 제3자 뇌물죄는 제3자로 하여금 뇌물을 받게 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이다.
SK 면세점 사업 인허가 개입 의혹 등은 앞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도 적시, 헌재의 탄핵 판단을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게 야 3당의 공통된 인식이다. 여기에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검찰이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추가에 사활을 건 만큼, 야권이 관련 탄핵 사유를 적시해 헌법 판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전략도 깔렸다.
◆헌법원리 정면부정…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헌법학계 다수는 국회 탄핵 소추안 중 사실관계의 연장선에 있는 혐의의 경우 소추 사유를 추가할 수 있지만, 탄핵 소추안 제출 이후 완전히 새로운 혐의를 추가할 경우 다시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황도수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성립 여부에 대해 “대기업들이 돈을 왜 줬느냐가 쟁점이 될 것”이라며 “대기업 혜택 여부 등 뇌물죄를 구체화하는 돈의 성격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약 111억 원을 투자한 SK가 최태원 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 ‘기대이익’을 가지고 재단에 돈을 헌납했다면, 뇌물죄 성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제3자 뇌물죄 등 형법 적시의 ‘딜레마’다. 야권이 검찰 공소사실 이외 사실 확인이 안 된 형법 위반 등의 내용을 추가할 경우 법리적 공방 등으로 헌재 판결 시간만 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국립 인천대 교수)은 이와 관련해 “야당이 탄핵 소추안에 뇌물죄를 적시하려면, 검찰이 추가 공소장에 뇌물죄를 적시한 것을 확인하고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시간만 끌게 된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끝내 임의수사에 응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범죄혐의와 관련된 압수수색, 긴급 체포수사 등 강제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 내부에서도 같은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드러난 의혹만으로도 박 대통령이 헌법 위반 사실이 명확한 만큼 탄핵은 문제없다고 본다. 헌법과 국회법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을 위배할 때’ 국회에서 탄핵을 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단 설립을 통한 뇌물 수수 및 공금 횡령을 비롯해 공무원에 대한 보복성 인사 등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 법치주의 위반이라는 것이다. 뇌물죄가 아니더라도 헌법 제1조 제1항의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원리 및 제7조 2항의 직업공무원제도 헌법 제24조·제67조의 민주주의 원리 등을 정면 위배,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