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최순실과 ‘세젤예’ 면세점

2016-11-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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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생활경제부 부장

KBS 2TV ‘개그콘서트’에 ‘세젤예’라는 코너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이 한 식당에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개그다. 이를 테면 자몽주스를 주문한 손님에게 식당사장이 주스가 떨어졌다고 말하면 입사시험에서 낙방한 다른 손님이 “저 지금 떨어졌다고 그러시는 거에요?”라고 따지는 포맷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안팎이 뒤숭숭한 요즘, 면세점업계야말로 재계의 ‘세젤예’ 캐릭터 같다. 그도 그럴 게 최씨의 국정농단이 다음달초 최종 사업자 선정을 앞둔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들에겐 위협요소이자 변수가 됐다. 특허 ‘연기론’은 물론 일각에선 ‘중단론’까지 들고 나올 정도로 반발기류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난 4월 관세청이 서울시내면세점 3곳(중견기업은 1곳)을 추가로 신설하겠다고 밝히면서 ‘면세점 3차대전’은 발발했다. 지난해 사업권을 잃었던 롯데와 SK네트웍스는 재기를 노렸고 첫 면세점 선정의 성과를 기대한 현대백화점, 그리고 추가확보를 노리는 신세계와 HDC신라면세점의 '5강'이 제대로 붙었다.

대대적인 언론광고로 기선을 잡는가 하면, 대놓고 네거티브 전략으로 경쟁사의 허점을 공공연히 알리거나, 혹은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대포공약’을 늘어놓는 기업들까지 나왔다. 점입가경이다.

언론 역시 사실상 마지막 남은 서울면세점 3장의 티켓을 누가 거머지냐에 관심을 쏟으며 기획기사와 연재기사를 연거푸 쏟아냈다. 하지만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최종 사업자 선정을 불과 한달여 남긴 상황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급기야 입찰 5개사의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최씨의 농단에 연루된 것이 알려지면서 8부 능선을 넘은 이들 기업의 낙찰전략은 올스톱됐다.

이후 면세점업계에 ‘최순실 포비아’는 단계적으로 퍼졌다. 첫 불똥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서 옮겨왔다. 입찰 5개 사 중 4개사의 이름이 거론됐다. 롯데는 계열사인 롯데면세점과 롯데케미칼을 통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총 45억원, HDC신라면세점은 삼성그룹이 미르와 K스포츠에 204억원을 출연했다. 워커힐면세점은 SK그룹이 111억원, 신세계면세점은 신세계그룹이 5억원을 그룹차원에서 각각 지원했다. 그나마 현대백화점만 논란의 굴레에서 조금 자유로웠을 뿐이다.

국정농단의 불씨는 최씨의 단골 성형외과에서 만든 화장품 브랜드 ‘존 제이콥스’가 대통령 선물세트로 선정된 것은 물론, 신세계와 신라면세점에 입점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면세점 주무부처인 관세청의 직원들이 주가조작을 통해 뒷돈을 챙긴 게 알려지면서는 특허 중단론과 연기론이 확산됐다. 지난해 7월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사업자 선정을 미리 알았던 관세청 6~7명의 직원들이 사전 정보를 이용해 주식에 투자하고 시세차익을 남긴 것이다.

즉각 정치권은 관세청에 대한 감사 청구를 진행하기로 했고 시민단체는 면세점 사업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며 면세점업계를 압박했다. 만약 12월 초 국회 본회의에서 관세청에 대한 감사청구가 관철되면 서울 시내 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 일정은 현실적으로 늦춰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관세청은 12월 중 예정대로 특허 심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특허 공고가 나갔고 사업자 신청까지 접수한 상황에서 이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면세점 후보 5개사 역시 중단이나 연기에 반발하며 기존 일정대로 관세청이 소화해주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면세점 3차 대전이 발발할 당시만 해도 출사표를 던진 5개사는 다소 여유있는 경쟁을 견지했다. 5개중 3개사가 선정되는데다 각자 차별화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강력한 ‘최순실 후폭풍’을 맞으면서 면세점 선정을 기대하던 '유통 5강'은 지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말년 병장의 상황처럼 극히 몸을 사리고 있다. 혹시나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이미지로 최종 선정에서 떨어지지나 않을까 여론에 민감해하고 언론에 예민해한다.

냉정하게 볼 때 이번 최순실 사태는 원칙과 정도를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 면세점 업계의 치열한 경쟁 구도는 차치하더라도 원칙과 심사기준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한다면 유통 5개사는 절대 '세젤예'를 자처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스스로 떳떳하다면 최순실을 '떨어지는 낙엽'으로 볼 필요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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