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는 미국, 그다음 부자 나라는 중국이다. 두 나라 국내총생산(GDP)을 더하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만들어 낸 부의 48%를 차지한다.
뒤를 이어 일본과 독일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인도와 영국이 가끔씩 자리를 바꾼다. 프랑스도 만만찮지만 만년 7위로 영국, 인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통계가 말한다. 한국은 2020년 정점을 찍고 매해 세계 GDP 순위에서 한 계단씩 내려서고 있다. 주가랑 비슷하다. 급락하면 위기감이 고조되겠지만 한 계단씩 슬금슬금 내려가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기 쉽다.
우리나라가 역대급으로 잘살았던 2020년과 2021년을 살펴보면 '동학개미운동'의 여파가 가장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대폭락 이후 시중에 막대한 유동성이 유입된 영향이 컸지만 증시에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코스피 3000시대가 열렸다. 전 세계 증시 중 한국이 상승률 1위였다.
2022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경험한 뒤 미국 증시로 떠나면서다. 2019년 해외 주식 보관액은 84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442억 달러, 지난해에는 680억 달러를 기록했다. 올해는 1000억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과거 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냈던 분을 최근 만났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을 묻자 미국은 정파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경제대국 1위 사수'라는 공통적 목표가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정권 유지다.
여당도 야당도 대통령도 경제를 얘기하지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제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고민했다면 상대방이 머릿수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하진 못했을 것이다. 증시는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할지 몰랐다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 사이에 껴 있다는 일촉즉발의 우리 기업들을 생각하면 반도체법, 인공지능(AI)법을 상정조차 못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목표가 경제였다면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주요 경제 정책이 바뀌고 국가 차원의 육성 산업이 달라지는 일도 없다.
서로 확증편향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이 우리 증시와 기업을 떠받치던 개인투자자들은 떠나고 있다. 개인투자자 1400만명이 국내 증시에 투자한다.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 올해 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 증시에 애써 남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내가 일단 권력을 잡은 뒤'라며 경제를 후순위로 미루고, 머릿수로 밀어붙여 우리 경제에 해악인 것을 알면서 정책을 선회하고, 말 안 듣는다고 총과 탱크로 밀어붙여서는 한국이 GDP 순위 10위권에 다시 이름을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넘어서야 할 나라들은 그만큼 만만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