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사태의 해결방법과 관련하여 주목을 끄는 것이 바로 대통령 탄핵의 실효성 논란이다. 지난 11월 12일 100만 국민의 촛불집회를 비롯하여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불신임이 강력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민주적 대표라면 자진사퇴해야 마땅하겠지만, 여전히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현행 헌법상 탄핵이 원칙적이고 유효한 방법이 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탄핵소추 자체도 쉽지 않겠지만 어렵사리 탄핵소추가 의결되더라도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라 실제 탄핵결정이 내려질지 미지수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내년 1월과 3월에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을 박근혜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탄핵심판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헌법재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이 얼마간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법관의 자격을 가진 재판관에 의한 헌법재판이다. 따라서 탄핵심판은 정치행위가 아니며, 국가의 사법작용에 해당한다. 비록 헌법재판관 9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있고 또 현실적으로 현 정부·여당의 영향을 받아 임명된 재판관이 있긴 하지만, 이것이 헌법재판의 사법적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전적으로 부인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물론 다소간의 의심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은 헌법재판이 단순한 정치적 결정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함께 마련하고 있다. 예컨대 법관의 자격을 가진 재판관일 것, 6년 임기와 신분의 보장, 그리고 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함께 요구하는 것은 바로 헌법재판이 공정한 사법이 되도록 하기 위한 핵심적인 장치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실제 사건에 임하는 재판관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자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건에 있어서 헌법재판의 결과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들로서는 헌법재판을 믿고 의지하면서도, 다른 한편 헌법재판이 국민의 의사라 할 수 있는 헌법을 실현하는데 충실한지를 항상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의 애증(愛憎)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헌법재판이야 말로 민주주의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보루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헌법재판소를 불신하여 밀어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응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지금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탄핵문제는 직무상 헌법위반과 법률위반이 중대하고 현저하다는 점에서 노무현대통령 때의 탄핵사건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에 준하는 정도의 엄격한 증거에 따른 ‘재판’이지만, 이미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중대한 헌법위반이라는 평가가 많다. 또한 탄핵심판에는 ‘헌법’재판의 성질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헌법질서의 안정성에 대한 탄핵결정의 역할 등이 그러하다. 그래서 자잘한 법위반을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에서는 대통령 탄핵사유로 법위반의 ‘중대성’을 추가로 요구했던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는 국민의 95%가 반대하는 대통령으로 인해 국정공백이 심각한데도 대통령이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헌법장애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엄중한 상황이야말로 탄핵제도의 존재 이유라는 점을 강조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신속한 탄핵결정을 통해서만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은 노련한 헌법재판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내년 1월과 3월에 각각 임기가 만료되는 박한철 재판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을 임명해야 하더라도, 탄핵위기에 몰린 대통령이 재판관을 정상적으로 임명할 수 있을지 만무하다.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해야 하므로 대법원장의 중립성에 기대를 걸어봐야 할 것이다. 남은 문제는 대통령의 몫으로 임명되는 재판소장의 자리인데, 이 역시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할 상황이겠지만 사법질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상 야당 주도의 인사청문회까지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결국 공석으로 비워두게 될지언정, 박근혜대통령 스스로 자기에게 유리한 재판관을 임명하여 자기 사건의 심판을 맡긴다는 것은 또 다시 헌법질서를 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에 탄핵심판 당사자인 박근혜대통령이 결국 재판관을 임명하게 되어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면 재판관의 제척·기피·회피제도를 활용해 볼 수 있다.
헌법은 이른바 ‘비상사태’에서도 가능한 한 ‘법치’의 근간이 유지되도록 필요한 극복수단을 함께 마련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헌법국가이고, 헌법재판의 역할이다. 거꾸로 이런 상황에서 탄핵조차 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헌법국가의 위기이다. 다만 정치적 기득권의 영향력을 뿌리치고 헌법재판소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당당히 법치를 실현할 수 있으려면, 우선은 공정한 헌법재판에 대한 국민적 믿음과 응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