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변한 캐릭터들은 배우 한예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곡차곡 제 영역을 확보하고 확장해온 그녀는 단단한 속내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왔고 현재에 이르러 제 목소리를 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청춘시대’는 외모부터 남자 취향, 연애 스타일까지 모두 다른 5명의 매력적인 여대생이 셰어하우스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유쾌하고 발랄한 여대생 밀착 동거드라마. 이번 작품에서 한예리는 학비와 동생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철의 여인 윤진명 역을 맡았다.
비단 진명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 속 은희 역시 한예리의 지난 캐릭터와는 분명 다른 지점이 있었다. 이 같은 ‘어떤 변화’들은 한예리의 심경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질문했다.
“어떤 변화가 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올해의 목표였어요. ‘난 다이어트를 할 거야!’ 같은 거죠. 고민하지 말고 들어오는 일들을 쉽게 선택하자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마이리틀텔레비전’이나 ‘육룡이 나르샤’도 도전하게 된 거고요. 대신 뜻하지 않게 많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아서. 하하하.”
드라마 ‘청춘시대’는 한예리를 비롯한 방송가, 시청자들에게도 여러 변화를 안겨줬다. 다섯 명의 여대생이 드라마를 이끌어나간다니.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구도였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변했고” 드라마도 영화도 조금씩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정말 반가웠어요. ‘이제 조금씩 바뀌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여성의 이야기가 없고 조금 더 많이 생겨야 하지 않느냐’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조금씩 변화를 겪는 것 같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여성의 저력, 주체로 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고요.”
어쩌면 가장 가까운, 그리고 가장 먼 캐릭터였을 진명. 한예리는 진명에 대해 “공감보다는 위로하고픈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어떤 한 장면을 꼽을 수도 없어요. 그냥 진명이 안쓰럽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아마 보는 분들은 더 했겠죠. 저는 진명이의 담담함,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연기해야 해서 깊이 들어가지 않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감정이 터지기 전에 막는 친구니까요.”
때문에 그는 “표정을 지우고, 더 유연한 몸을 표현”했다. 감정표현에 서툰 진명이 경직돼 보이지 않았던 건, 그의 자유로운 몸짓 덕분이었다.
“평소 진명의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에서 아주 약간씩 변화하는 것들.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 미세함이 진명이를 대변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표정, 신체에 변화를 주는 것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손톱이 빠진 자리에 새로운 손톱이 났으면 하고 바랐고, 감독님께 밴드를 떼어내는 신을 넣어달라고 부탁드렸죠. 그 손톱은 남동생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진명이라는 인물의 세세한 결, 그리고 탄탄한 이야기는 오롯이 배우 한예리의 것이었다. 그는 진명의 미래에 대해서도 확고한 믿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재완(윤박 분)을 두고 홀로 중국으로 떠난 것도 어쩌면 가장 진명이 다운 선택 아닐까요? 하우스 메이트들끼리도 ‘진명이는 중국에서 터를 잡고 가게를 차려 재완이를 부를 것이다’라고 상상하곤 했어요. 힘든 시간을 견뎌온 두 사람이니까 재완이와는 잘 됐을 거라고 곁들이기도 하고요.”
극 중 윤박과의 로맨스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기도 했다. 감정표현에 서툰 여자와, ‘밀당’ 없이 주기만 하는 남자의 ‘직진 로맨스’ 말이다.
“한 번은 감독님께서 ‘빵끈 반지’에 대해 ‘요즘 이런 게 어디 있느냐’며 진저리를 치시는 거예요. 우리는 ‘왜요! 너무 좋은데! 너무 달달한데!’하고 발끈하고요. 하하하. 여자들은 그런 게 있잖아요. 마음적인 거. 진명이에게 재완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맨틱한 재완과의 로맨스는 뭇 여성들에게 설렘을 안겼지만, 한편으로는 “로맨틱한 재완과 재밌는 성격의 윤박 사이에 간격이 크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한예리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윤박 씨가 되게 재밌는 성격인가 보죠?”라고 되물었다.
“다들 윤박 씨가 재밌을 거라고, 재밌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묵직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제게는 재밌는 모습을 안 보여줬어요. 하하하. 제가 선배기도 하고, 드라마에 출연을 잘 안 하니까 윤박 씨가 어려워한 것 같아요. 종방연이 다 돼서야 제 핸드폰 번호를 물어보더라고요.”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시즌2 출연 의사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예리는 “시즌2가 나온다면”이라고 운을 떼자마자 “다른 사람이 진명을 하는 건 싫을 것 같다”며 솔직하고도 깜찍한 답을 내놓았다.
“사실 셰어 하우스 벨 에포크는 누가 나가고 들어온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시즌제로 운영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시즌2를 찍는다면 저를 비롯해 다른 배우들도 (출연) 의향이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