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제는 현대그룹 ‘맏형’으로 우뚝”…현대엘리베이터 이천 공장을 가다

2016-08-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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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계열 분리 후 주축사로 자리매김

(아주경제=경기 이천) 김봉철 기자 = 현대엘리베이터는 1984년 설립돼 32년 동안 국내 승강기 업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대부분의 국내 엘리베이터 업체가 외국계 기업에 넘어갔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버텼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최근 몇 년 간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 속에서도 유일하게 ‘토종 엘리베이터’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35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던 지난 19일 현대엘리베이터 이천 공장을 찾았다. 그룹의 핵심계열사였던 현대상선인 계열 분리된 뒤 첫 현장 방문이었다. 뜨거운 날씨에도 공장에는 직원들은 제품의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기도 이천 공장 내 위치한 현대아산타워의 모습.[사진=현대엘리베이터 제공]


◆ 기술력의 ‘끝판왕’, 초고속 엘리베이터 ‘디 엘’

먼저 경기도 이천시의 ‘랜드마크’이자, 현대엘리베이터의 심장부인 ‘현대아산타워’에 들어섰다.

공장에 우뚝 솟은 205m, 52층 높이의 연구·시험용 현대아산타워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기술력이 집적된 곳이다. 세계 최고 높이의 엘리베이터 테스트타워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분속 1080m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디 엘(THE EL)’은 기술력의 결정판이었다.

디 엘을 타고 현대아산타워 전망대 하층부인 50층까지 오르는 데는 채 20초 남짓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반 아파트, 오피스텔이 90~120m의 분속인 것을 감안하면 10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이에 반해 고층 엘리베이터를 올라갈 때 흔히 생기는 귀가 멍멍한 느낌이 디 엘은 전혀 없었다. 디 엘의 소음저감형 특수 도어가 바깥 진동과 소음, 기압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50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고 52층 전망대에 오르니 탁 트인 이천 시내가 눈앞에 펼쳐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한 개의 승강로에 2대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수송능력을 1.8배 향상시킨 더블데크 엘리베이터 △기존 엘리베이터에 비해 60%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전력회생 인버터 엘리베이터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손 글씨로 층수를 직접 입력하는 OPB 엘리베이터 등은 현재 상용화돼 기존 승강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더블데크는 이미 서울 용산 LG유플러스 신사옥에 설치돼 상업운행 중이다.

1층에는 고객센터인 ‘현대CCC(Customer Care Center)’가 365일 24시간 운영되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위치정보에 기반해 전국에 설치된 현대엘리베이터 운용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첨단 원격관리서비스(HRTS)는 실시간으로 엘리베이터 운행상태를 감시해 오류코드를 바로 잡아낸다. 화면에는 일일, 월별 고장 건수와 서비스 기사가 엘리베티어가 고장난 지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초단위로 카운팅되고 있었다.

이어서 바로 옆에 위치한 생산 1·2·3공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1공장은 판금, 2공장은 구조물과 비승강기 부문, 3공장은 기계 가공공장으로 엘리베이터의 핵심 부품인 권상기가 제작되고 있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90606a@]


◆ “한국 승강기 산업 뿌리 지킨다”…공장 자동화·인력 양성 집중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 규모는 연간 3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국내 전체 승강기 설치 대수는 3만7452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이 가운데 1만6217대를 차지하며 43.3%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무려 9년째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1년 8792억원이던 연결기준 매출은 2013년 1조662억원으로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 이래 지난해 1조448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14년 1000억원대에 진입하면서 고공행진 중이다.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역시 8140억원, 영업이익 814억원, 당기순이익 209억원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이는 지속적 R&D(연구개발)에 따른 결과라는 게 현대엘리베이터 측의 설명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국내 산업을 지켜내자는 집념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채홍룡 현대엘리베이터 제조본부장(상무) “중국의 공세에 맞서 한국 승강기 산업의 뿌리를 지켜야 한다”면서 “진화하지 않고서는 절대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국산 저가 부품 도입에 대한 강한 유혹을 뿌리치고 생산성·원가 혁신과 공장 자동화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 결과, 258개의 협력사에 1만여명의 연관 종사자들이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지금도 지난 16일까지 전 직원 여름휴가에 맞춰 총 54억원을 투입, 판금 자동화 및 라인 생산성 향상 작업 진행하고 있다. 오는 10월까지 생산라인 정비가 모두 끝나면 30% 이상 생산효율성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채 본부장은 국산화의 중요성에 대해 “엘리베이터는 설치만 하고 끝나는 산업이 아니라 유지·보수가 생명인 산업”이라면서 “시장이 외국 자본에 잠식 됐을 때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본다”고 설명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R&D 투자 외에 지난해 8월 이천 공장에 기술교육원을 설립하고 운영 인력 양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기술교육원에서는 본사 및 협력사 직원 등을 대상으로 총 17개 전문 기술 교육 과정이 연간 총 60차례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올해 3월 장병우 대표 취임 이후 크게 달라진 점은 해외 시장 개척 분야다.

장 대표는 2030년까지 해외매출 3조6000억원, 글로벌 ‘톱7’ 진입이라는 의욕적인 사업목표를 세웠고, 이를 위해 10개의 해외법인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수출 대상국인 62개국 중 시장매력도 및 진출 용이성을 토대로 인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10개 진출 우선 추진국가를 선정했다. 이들 국가에는 2020년까지 매년 2개, 총 10개 법인 신설을 추진한다.

현재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국과 브라질의 생산법인을 비롯해 미국·인도 등 9개국에 물류법인을 설립했으며, 아시아·중동·미주 등 대륙별 59개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 산업계 ‘하투’ 속 모범적 노사 모델…“회사 없이는 노조도 없다”

현대엘리베이터 이천 공장이 창사 이래 최초로 월 생산대수 2000대를 돌파하며, 연간 생산 2만대 시대를 열게 된 것은 노동조합의 도움이 컸다.

요즘 제조업에서는 드물게 2교대 작업을 감수하며 쏟아지는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노조는 소위 잘 나갈 때 서로 욕심을 부릴 수도 있지만, 올해까지 28년 무분규를 기록하며 회사와 상생·협력하고 있었다.

올해는 아예 임금인상안을 노조에 일임했을 정도로 노사 간의 신뢰가 두텁다. 채 본부장은 “노조가 회사 중요 결정 사안에 모두 참여한다”면서 “이러한 노사 문화가 회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인력 구조조정 측면에서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스마트 팩토리 사업도 노조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 최근 이른바 ‘하투(夏鬪)’가 한창인 가운데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손만철 현대엘리베이터 노조위원장은 “노조원들의 2교대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장비 투자가 진행돼야 우리의 생산기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손 위원장은 “회사와 업종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힘든 상황 많았다”면서 “어찌됐든 노조도 회사가 잘 돼야 유지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천 공장 내 ‘정몽헌 R&D센터’ 1층에는 2년 터울로 명을 달리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그의 5남인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센터 1층과 회의실 곳곳에는 ‘담담(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라는 정 명예회장의 휘호가 보였다.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32년 동안 많은 부침을 겪었다. 건설, 자동차, 전자 등 한때 재계 1위 현대그룹의 쟁쟁한 계열사들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핵심계열사였던 현대상선이 구조조정 끝에 산업은행으로 편입되면서 이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룹 내 명실상부한 ‘맏형’으로 자리 잡게 됐다. ‘담담한 모습’으로 말이다.

현대아산타워 1층에 위치한 '정몽헌 R&D 센터에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사진=김봉철 기자 nice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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