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위기는 곧 도전. 달라진 국제정세 만큼이나 변화한 외교환경에 걸맞는 우리의 외교 전략을 이끌어 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판스밍(范士明)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많은 중국인들은 서방 특히 미국이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으며 중국은 마땅히 얻어야 할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이 패권질서를 확립한 방식은 역내 파트너 국가들을 미국의 동맹 체제내에 포섭하는 방식으로, 일본·한국·필리핀 등 동아시아 개별국가들과 양자동맹을 맺는 수직적인 질서를 구축했다.
하지만 냉전 시절 공고하게 유지되던 미국 중심의 동북아 질서가 균열과 재편의 징후를 보이고 있고 특히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그 움직임이 보인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전후체제 탈각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고, 중국은 시진핑이 '중국의 꿈(中国梦)을 내세우며 미국에게 '신형대국관계'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도 푸틴의 지도 아래 강대국 지휘를 되찾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로의 재균형' 정책을 내세우며 이 지역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순순히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섭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외교상상력-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에서 "미중 간 패권 경쟁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간의 경쟁과 긴장구도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 중일관계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하토야마 내각의 중국 중시 태도와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 민주당 수뇌부들의 친중 성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다가 2011년 출범한 노다 내각이 미일 동맹 우선 노선을 분명히 하고 이듬해 아베 내각이 등장하면서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일동맹을 유지하되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자는 '대중연대론'이나 미일동맹을 유지하되 중국에 대한 관여를 확대하자는 '대중관여론'이나 미일동맹을 상대화하고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자는 '대중연대론'은 이제 힘을 잃고 중국 견제에 중점을 두는 '미일동맹론'으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냉전시대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는 동시에 일본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던 미일 동맹이 이제 중국의 힘이 커지자 미국이 일본의 재군비를 유도하고, 아베 내각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상호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 각국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중심적 질서가 유지되거나 새로운 중화질서가 다시 찾아온다는 것인데, 과거처럼 한 국가가 주도하는 제국적 질서의 부활은 쉽지 않다는 게 복수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미중 경쟁구도에 일본이 미국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한미일 3각 협조체제에 일익을 담당해 줄 것을 희망하는 반면, 중국은 미국의 동맹 체제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을 중국쪽으로 끌어 들이려 할 것이다. 한국 외교 안보가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 기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한반도 통일 문제 및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한국 입장에서는 과거 일본이 추구한 '전방위 외교'전략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본과 미국에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실상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면서도 모든 국가와 충돌없이 형성되는 '협력'외교다.
추수롱(楚樹龍) 중국 칭화대학교 국제전략발전연구소 소장은 "중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국제 사회의 형세가 어떻게 변화 하더라도 세계 각국과 우호 협력 관계를 발전시켜나간다는 방침이 변할 수는 없다고 늘 말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본지 25일자 1면>
추 소장은 "이것은 중국 정부의 선전(宣传)과 원칙(原则)일 뿐만 아니라 중국 외교정책의 진실한 목표와 내용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전방위 외교'와 일맥상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