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조선 잔혹사' 허환주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40대 여성이 6미터 아래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됐다. 그런 큰 사고가 발생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현장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출근할 때마다 보이는 정문 앞 전광판 '오늘도 안전 근무, 무재해 무사망자 389일'도 그대로였다. 숫자는 0이 되어야 했으나 오히려 숫자는 하루가 더 늘었다. 그녀는 산재 처리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었다."(본문 116~117쪽)
'지옥선' '죽음의 공장' 등으로 불렸던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은 2016년 현재 얼마나 나아졌을까?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를 취재했던 저자는 그 전에 이미 1600여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뒤쫓는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를 다시 조선소로 불러들인 것은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진 13명의 산재사망 사건. 저자는 그들의 죽음을 파헤치며 위험한 일터는 왜 변하지 않는지, 왜 똑같은 죽음이 반복·은폐되는지 등을 끈질기게 추적해 나간다.
일하다 다치고 죽어도 기업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부르대고, '불황'이라 기업의 노동 유연화 요구와 세금 감면 요청은 받아들이지만 하청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은 안중에도 없는 국가, 그리고 이 사회에 저자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오로지 배를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쓰이다 가차없이 버려지는 이런 삶은 과연 우리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미명 하에 사람의 목숨, 일할 권리보다 기업의 이익을 중히 여기는 사회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 아닌가?"
304쪽 | 1만5000원
◆ '10년 후의 일상' 편석준 지음 | 레드우드 펴냄
스마트폰 화면에 근처 식당들의 메뉴가 흘러간다. '점심 메뉴 결정 앱'은 화면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 호흡,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수집·수치화해 현재 이용자들이 가장 원하는 메뉴를 찾아낸다. 더 이상 '오늘 뭐 먹지?'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33편의 짧은 소설들을 담은 이 책은 이처럼 과학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한 10년 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인간적인 것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인간지능의 늪에 갇힌 인류의 일상을 클로즈업하며 가끔은 코믹하게, 가끔은 씁쓸하게, 또 가끔은 엽기적이면서도 발칙한 일상을 펼쳐 보인다.
책에는 해변에서 피자와 맥주를 즐기며 업무를 보던 직장인들에게 회사 기여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피드백해주는 업무용 프로그램, 소개팅에 나가기 전 다른 연인들이 사용하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유출 데이터를 활용하는 여자, 짝사랑하는 이웃집 소년을 위해 선물과 고백 편지를 실은 드론을 날려보내는 소녀 등 '생소하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 그려진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 왜 '10년 후의 지구' 또는 '10년 후의 트렌드'가 아니라 소박하게도 '10년 후의 일상'인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24쪽 | 1만2500원
◆ '지식창업자' 박준기 外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현 세대 최고의 부를 이룬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워런 버핏 등의 자본가들은 실제로는 지식 자본가, 즉 '지본가'(智本家)다.
'지식창업자'의 저자들은 지금이 충분한 지식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개미가 코끼리를 밀어 절벽에 떨어뜨리고 고양이가 호랑이를 이길 수 있는 '지식 우위의 시대'임을 분명히 하며, "지식을 기반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자신의 독점적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부를 창출했으며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진 지식은 무엇이며, 어떻게 창업 밑천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회와 가능성을 전 세계 32개 지식 창업팀의 사례를 통해 모색한다.저자들은 "자본으로서의 지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직업과 취미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직업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지식, 심지어 취미로 즐기고 있는 게임·요리·장난감·글쓰기마저도 창업에 중요한 자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성공한 지식 창업자들은 하나의 지식 혹은 다양한 콘텐츠를 분석·가공하는 서비스로 성공의 길을 열었을 뿐이다. 아프리카TV와 유튜브에서 메이크업 방법, 화장품 리뷰, 게임 대신해주기 등의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와 수익을 얻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들의 활동을 '덕질'이라고 폄훼하는 시선도 있지만, 이들이 제작·유통하는 콘텐츠가 기존 미디어의 아성을 공격하며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내 미래를 책임져주는 회사는 없다지만, 그렇다고 퇴사 후 카페나 치킨집은 차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나만의 밑천 만들기'에 귀기울일 만하다.
296쪽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