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언어의 섬세함과 예민함에 매료되는 사람으로서, 번역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인 것 같다.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원작에 충실한 번역은 감정과 톤을 잘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46)은 24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귀국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며 25일 출간되는 신작 소설 '흰'을 발표했다.
그는 "수상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며 "시차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고, 현실감 없는 상태에서 상을 받았다"고 수상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는 "상을 받은 뒤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줬는데, 어떤 이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마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 헤아려 보던 1주일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창비) 등 그의 작품이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그는 "특히 채식주의자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시대를 견딜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소설이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작품이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한강은 한 소설의 끝이 다른 소설의 시작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글을 써오고 있다. 앰뷸런스 차창 밖을 항의하듯 응시하는 인혜의 시선으로 마무리되는 채식주의자가 그 다음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문학과지성사)의 시작 지점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그렇다면 인간의 어떤 점을 바라봐야 하는가' 등을 질문(고민)해 왔고, 그 답을 얻는 것이 나의 영원한 숙제라고 여긴다"고 밝혔다.
그가 이날 발표한 신작 소설 '흰'(난다)은 그의 근원적인 질문들이 이제 '압도적인 폭력의 상황에서도 밝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에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시 또는 소설 어느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을 정도의 독특한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씨는 "1940년대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됐던 곳, 바르샤바에 머물며 여기에 살았던 '어떤 사람'을 상상했고, 내가 그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다"며 "결국 그것은 '흰 것', 즉 눈부심, 밝음, 빛 등이었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글을 쓰며 책의 형태로 여러분께 드리고 싶다"며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서 글을 쓰고 싶다"고 발언을 마쳤다.
한편 한씨는 오는 6월 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성북동 스페이스오뉴월에서 차미혜 작가와 함께 '소실점'(Vanishing. Point)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펼친다. 그는 이 전시에서 '흰'을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