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여성작가로서도 최초다. 문학사의 새 역사가 씌여진 것이다. 문체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1.7권에 불과하고 성인 10명 중 6명은 일년 내내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데 책을 살 리는 없을 터, 만성 불황에 시달리던 출판계가 한강 덕분에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노벨상 수상 6일만에 한강 작품 판매량이 백만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른바 한강 신드롬이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까지 회자된다.
수상자 발표 당일부터 한강을 다룬 기사나 글이 끊이지 않는다. 그녀의 가정사까지도 전국민이 공유하게 됐을 정도로. 넘쳐나는 한강 관련 기사 중 유독 그녀의 겸손한 언행에 마음이 끌렸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자가 으레껏 하는 기자회견을 마다했다. 아버지가 동네잔치를 하겠다는 것도 말렸다. 전쟁으로 날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며 기자회견을 하겠느냐는 생각, 인생 최고의 순간에 아무나 이런 생각 못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관 건립에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강은 노벨상 발표 일주일 뒤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비로소 수상 소감을 말하며 독자들과 출판계와 서점 종사자들, 동료 선후배 작가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2017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 수상 때는 자신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에 대한 고마움을 빼놓지 않았다.
한강의 겸손을 지켜보노라니 남북조시대의 문인 사령운(謝靈運)이 떠오른다. 사령운은 당시 문학적 표현 대상이 못되었던 산수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의 주제로 채택함으로써 '산수시인(山水詩人)'으로 불리며 일가를 이루었으나 겸손함을 잃어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 요즘 태어났다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물망에 올랐을 수도 있는 그의 이야기를 해보자.
난세의 영웅 조조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셋째 조식의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조식은 건안문학(建安文學)을 대표하는 인물로, 붓을 들어 쓰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는 성어 '하필성문(下筆成文)'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후세에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뭐니뭐니 해도 칠보시(七步詩)다. 권력을 승계한 장남 조비가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할 정도로 뛰어난 동생 조식을 경계해 아예 죽일 작정으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를 지어보라고 명했다. 이때 조식은 콩과 콩깍지를 형제에 비유하며 우애를 강조한 오언시를 지어 위기를 벗어났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 남북조시대 남조의 송나라에서 사령운(謝靈運)이 필명을 날렸다.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사령운의 시는 당대 지식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황제였던 송문제(宋文帝)는 아예 그를 도성으로 불러들여 관직을 제수하고는 늘 곁에 두고 시를 짓고 글을 쓰게 할 정도로 총애했다. 사령운이 정치적 좌절을 겪고 은거에 들어갔을 때 시 한 수를 새로 지으면 하룻밤 사이에 도성으로 전해졌고, 사람들이 다투어 베껴 쓸 만큼 그의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
늘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긴 사령운은 갈수록 기고만장해졌다. 하루는 그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진(魏晉) 이래 천하의 문학 재능이 모두 해서 한 섬이라면 그중 조자건이 혼자 8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 그 외 다른 사람들이 나머지 한 말을 나눠가졌다(魏晉以來, 天下的文學之才共有一石, 其中曹子建獨占八斗, 我得一斗, 天下其他的人共分一斗)."
자건은 조식의 자(字)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조식의 글재주를 칭송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세상사람 모두의 재능을 더해도 자기 한 사람에게 미치지 못함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글솜씨로 이름을 떨친 문사들이 고금에 어디 한둘이던가. 교만한 처신으로 말미암아 사령운은 권신들의 배척을 받았고 좌천과 유배를 몇 차례 겪은 끝에 끝내 대륙의 남쪽 변방 광주에서 피살되었다. 그의 나이 겨우 49세 때였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나 그러한 재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성어 재고팔두(才高八斗)가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출전은 송나라 때 작자 미상의 《석상담釋常談》이다. 팔두지재(八斗之才), 재점팔두(才占八斗), 팔두재(八斗才), 그리고 조식의 고사에서 유래한 칠보지재(七步之才)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교만은 천천히 자살하는 독약'이라는 말도 있다. 사령운은 겸양지덕(謙讓之德)을 모른 탓에 문재를 더 꽃피우지 못하고 생을 불행하게 마감했다. 반면에 한강의 겸손은 아직 한창 나이인 그녀의 더 큰 문학적 성취를 기대하게 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하며 선정 사유로 삼았다. 시적 언어로 충만한 한강의 문학세계를 친숙한 모국어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렌다.
사람들이 책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읽기와 쓰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부쩍 커졌다. 영상이 득세하는 시대, 독서라는 낱말이 낯선 시대, 인문학이 괄시를 받는 시대에 말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사회에 준 선물이다. 등화가친의 계절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이참에 나도 서점에 가서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한강의 대표작들을 사서 읽어봐야겠다. 매진, 품절 사태가 이제는 좀 해소됐을려나.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