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선점했던 경제민주화 공약을 역이용해 20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었던 경제민주화 이슈를 '제대로 이뤄내겠다'고 공언한 야당의 전략은 민심과 통했다.
때문에 이번 20대 국회에서 재벌개혁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두고 재계를 비롯한 경제계 전반의 관심이 쏠린다. 한진그룹의 '땅콩 회항', 롯데가의 '형제의 난'으로 재벌기업에 대한 민심은 돌아선 지 오래다. 대선을 앞두고 야당이 재벌개혁을 가속화하면서 이슈를 선점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당에서 이를 어떻게 맞대응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더민주의 이번 총선 공약 과제 중 하나가 '상생과 협력의 경제민주화 완성'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및 기존 순환출자 해소 추진, 금융소비자보호법(가칭) 제정, 사회적 경제기본법 제정 등으로 경제민주화를 법제화하는 공약들을 내놨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재벌 총수일가의 '부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공약이다. 우회출자나 계열사 지분과 자사주 교환 등을 활용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기업을 규제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고질적인 '황제경영'에 칼을 대 투명한 지배구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횡령과 배임 등 총수 일가의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등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는 19대 국회에서 계류중인 법안에 다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계열사 합병 및 분할 시 자사주를 활용해 편법으로 지분율을 높이는 '자사주의 마술'을 손보는 상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각각 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 계류중이다. 김기식 의원과 이종걸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총수일가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 계열기업 관련자 등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정무위에 걸려있다. 기업 산하 복지재단이 증여세 회피 및 편법 상속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익법인을 폐지하는 박영선 의원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도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19대 국회 임기는 5월 29일까지다. 여야 3당은 마지막 임시국회 내 가능한 많은 법안을 처리하기로 의기투합했지만, 사실상 무쟁점법안들만 처리하고 끝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각각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하는 당내 상황을 고려하면 법안 협상이 진척을 거두긴 실질적으로 어렵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중요하지만 낙선한 의원들이 법안 처리에 주력할 가능성도 낮다.
19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 해당 법안들도 모두 자동폐기된다. 이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이른바 '경제통'으로 불리는 다수의 야당 의원들이 다시 관련 법안들을 줄줄이 발의할 전망이다. 더민주의 박영선 의원과 이종걸 원내대표 외에도 국민의당의 채이배 당선인(비례), 김성식 당선인 등이 거론된다.
◆ 與, '낙수효과' 기반한 공정시장 확립 맞불
여당 내에서도 일부 재벌기업의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에 부정적인 여론이 있다. 박근혜정부가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한 것도 경제민주화 추진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4년만에 국회로 돌아오는 새누리당 이혜훈 당선인도 1호 법안으로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범죄를 저지른 재벌기업 경영진들이 죗값을 치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규제를 풀어 경기를 부양하자는 내용의 '경제활성화'론을 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벌개혁을 입에 담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낙수효과를 통한 경제질서 확립이다. 대기업이 2차, 3차 협력업체와 이익을 배분하는 '다자간 성과공유제'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연결짓는 데 대해 선을 긋고 있는 점은 경제민주화 '이슈 파이팅'의 변수다. 중도보수층으로 외연을 확장한 국민의당과의 경쟁구도에서 표심을 감안한 접근으로도 해석된다.
19대를 끝으로 국회를 떠나는 김기준 더민주 의원은 기자와 만나 "양극화가 계속되고 경제상황이 만만치 않은 만큼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들은 한층 강해지리라 본다"면서 "20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을 해야 하고,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재벌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경제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방안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