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선진국은 자본주의로 성공한 서방의 '경제적 부국'을 의미할까? 여성 대통령, 여성가족부 등 선진국들도 부러워할 만한 ‘법’과 ‘조직’이 있는 곳이 우리나라다. ‘성(性 ; Zender)’에 선진적인 우리 나라가 무상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세계를 돕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에 요즘은 많은 국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산다.
작년 네팔대지진에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은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수십 억의 성금을 가지고 지진현장으로 달려갔다. 별 연고도 없는 듯이 보이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의 ‘긴급구조’와 ‘재건복구’에 우리나라가 그렇게 힘쓴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이주아동 권리보장기본법안’(일면 이자스민법)이 19대 국회에서 심의조차 못 받은 채 자동폐기된 듯하다. 이젠 영화 ‘국제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독일 광원(광부의 높임말)과 간호사들의 성공신화가 있는 나라가 우리다. 미디어에서는 잘 다루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미국 불법체재 등을 통해서 일부 정착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재미교포’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류 ‘디아스포라’를 이룬 우리는 이미 ‘개구리 올챙이 적’을 잊은 것일까? 이미 18대 국회 때 발의되었고,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국격’을 높일 수 있는 법이었다. '일베(일간베스트)와 오유(오늘의 유머)가 모두 다 이자스민 의원만을 비난하고 있기 때문일까?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 비준한 우리나라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대로 ‘미등록 이주 아동’에 대한 의무를 잊어서는 안된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라는 어려운 말보다는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같은 ‘인간’에 대한 당연한 의무일 따름이다. 비록 불법이지만, 우리를 위해 일하는 이웃사촌의 아이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다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가부의 적극적인 활동과 반비례하며 땅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제2의 이자스민'의원만 같은 다문화 비례대표는 나오지 않았다. 인기에 민감한 정당들은 임기 내내 반(反)다문화 세력의 타깃이 된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혐오 정서를 무시할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족을 포함한 이주민들이 일으킨 일부 엽기적인 강력사건과 함께, 불쌍해서 보살펴야 할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받아들일 만큼 우리의 사회적인 인식은 성숙되지 못한 듯하다.
우리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우리 한국인들의 다문화 인식은 뒤처지고 있기만 하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가 현실임에도 이민정책을 노동자 수급이라는 측면에서만 다루며 21세기 미래인구정책에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 통계상으로도 한국 노동인구 가운데 2.3%가 외국인이고 5000만 인구 중 약 200만명 즉 4%정도가 외국인이다. 극히 일부의 이주민이 문제를 일으키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우리 나라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권익을 대변할 만한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한명도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등록 이주아동도 출생 신고를 해서 우리나라에 있을 때는 교육과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법안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UN사무총장까지 배출했고, 세계인이면 누구나 존경하는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모국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세금도 안 내고 일자리 빼앗아가고 군대도 안 간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외국인을 외면할 것인가? 조만간 제20대 국회가 구성될 것이다. 여론에 조금 자유로울 수 있는 초기에 이주민 아동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이 인류애적인 법안을 꼭 통과시켜주기를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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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사부대중이 맑고 밝은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한 자성과 쇄신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일부 전문가와 시민들의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