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⑮-끝 “성장동력 육성 위한 발상의 전환 필요”

2016-03-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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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도차량산업의 발전방향

현대로템이 제작해 공급한 ITX-새마을 간선형 전동차. [사진=현대로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대규모 부실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한 대기업은 그동안 유지해왔던 철도관련 사업팀을 없애고 타 사업부에 흡수시켰다. 제품 생산은 지속하지만 매출 규모가 워낙 미비해 전담 팀을 둘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대기업의 사례는, 철도차량 제조사업에 대한 기업의 시각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여준다. 본지가 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국내 대표 완성차량 업체인 현대로템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고, 이에 부품과 시스템을 담당하는 대기업들도 하나 둘 사업팀을 없애고 있다. 1, 2차 협력사로 참여하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상황 또한 최악의 지경까지 몰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들어 국토교통부가 철도차량산업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업체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곧 가시적인 성과물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하나도 없다. 철도차량산업 이슈는 산업적인 측면이 아닌, 안전에 초점이 맞춰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 철도차량산업 ‘유치산업’ 못 벗어나
국내 철도차량제조산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대표적 원인으로는 △작은 내수시장 규모 △불규칙한 발주물량으로 인해 안정적인 공장생산 부하 유지 곤란 △자국 철도산업 보홀를 위한 세계 각국의 입찰방식 제한 △기술주도권 유지를 위한 인증제도 등 기술장벽 △국내 관련 기업들의 전문인력, 자금 등 기반자원 부족으로 인한 시장 개척 투자 및 전략 수립 곤란 △시험차량, 선로, 장비등 인프라 부족 및 영업운행에 밀린 시운전 기회 확보 어려움 △신기술 개발후 발생하는 운영기관의 사용실적 또는 해외인증 요구 등 상용화까지 많은 난관 존재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예측 불가능한 수요 정책, 외국기술 도입 선호, 열악한 연구개발(R&D) 투자환경은 철도차량 및 부품기술 개발의욕 저하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부품업계의 영세화, 국내 철도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납품 가능한 시장이 국내로 한정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철도제조산업의 상품과 재화의 시장은 수요자가 국가나 지방정부이므로 시장 규모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사회적 목적 실현에 필요한 범위에 국한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는 철도제조산업의 국내시장 규모가 협소하므로 이를 보호하고 있다.

또한 주요 철도선진국가들의 철도제조산업은 정부의 산업보호와 육성정책의 지원을 받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국가들은 유치산업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철도용품과 차량제조산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와 육성정책에서 상당히 소외되어 왔다. 최근 고속철도를 비롯한 세계철도건설 붐이 조성되면서 국내 철도산업 업체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나 정부의 지원 정책은 철도용품의 품질향상과 해당기업에 대한 일부 R&D 정책금융을 지원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한국의 철도제조산업도 아직 유치산업 상태에 머무르고 있으며, 산업의 내수시장 규모도 연간 5000억원 내외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철도차량의 수요자인 철도운송서비스기관, 즉 공공기관들이 대규모 재정적자 누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이러한 적자의 대부분을 국가재정에서 보전해 주고 있다.

반면, 철조제조산업은 산업보호와 육성을 위한 적절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 없다. 역할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정부 부처내 주체가 분명하지 못해 철도제조산업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머무르고 있다.
 

[자료=업계 종합]


◆모든 문제가 복합된 ‘종합병원’
아주경제신문은 지난 2월부터 이번까지 15회에 걸쳐 철도차량산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봤다. 현대로템의 경영악화라는 개별 기업의 문제를 넘어 현대로템을 중심으로 가치사슬로 엮인 철도차량산업 전체로 확대해 보고 이 과정에서 그동안 정부와 여론의 무관심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을 발굴해 보고자 노력했다. 다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사안의 복잡성, 취재 능력의 한계로 인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취재에 응해준 철도산업업계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업계가 위기 상황에 몰린 이유는 세세한 부분의 문제점들이 종합적으로 불거진 것으로, 어느 한 가지가 해결된다고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철도차량산업은 다양한 병이 모인 ‘종합병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워낙 중증이라 한 두번 수술로는 치료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해외업체의 국내시장 진출 장벽을 하나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철도차량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사정상 주력산업의 수출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통상정책 차원에서 내줄 건 내줘야 한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취지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너무나 심각히 생각해 교역 상대국의 통상보복 발생 가능성에 집착한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전문가는 “우리가 부족한 기술력은 해외에서 도입하는 것이 맞다. 단, 기술을 도입할 때 그 기술이 우리 기업들에게 이전돼 국산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또한 국산 제품 사용률을 제시하고,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줘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정해주지 않았다. KTX의 안전운행의 핵심장치인 신호장치는 외국에서 도입했다. 그런데 완제품을 그대로 들여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 기술진은 접근이 불가능해 해외공급업체에 매번 의뢰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철도차량산업의 추세가 1국 1사 체제로 가는 흐름이니 현대로템의 독점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정부나 정치권에서 보기에는 듣기 거북할 수 있다. 독점체제가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쟁체제를 유지하겠다면 정부는 먼저 우리 기업끼리의 경쟁체제로 판을 만들어 줬어야 옳다. 부품업체였던 중견기업들이 완성차 업체로 성장해 자체적인 역량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한 다음, 외국업체에 문호를 개방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커녕 현대로템이 출범도 하기 전에 국내 철도차량산업은 외국에 개방됐다. KTX산천과 해무(HEMU430X)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에 취해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국내 철도차량산업 업체들의 고민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5000억 원 규모의 좁은 내수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책보다 72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정책을 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철도차량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철도차량산업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주력산업에 비해 철도차량산업이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철도차량산업은 생각만 달리하면 미래 신수종 성장산업으로 키울 수 있으며, 성공 가능성도 매우 높다. 현 위기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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