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차량산업위기] ⑫ ‘주인 없는 회사’ 폐단 드러내···결국 현대 품으로

2016-03-08 06:23
  • 글자크기 설정

현대로템, 정책의 수혜자인가, 피해자인가? ③

현대로템이 공급한 서울메트로 1호선 전동차[사진=현대로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99년 7월 1일. 현대정공과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3사의 철도차량 제조 부문이 통합한 (주)한국철도차량이 정식 출범했다.

1998년 7월말 철도차량이 ‘빅딜(Big Deal, 대규모 사업교환)’ 대상 업종으로 선정된 지 11개월여, 현대정공과 나머지 두 회사와의 갈등 속에 일원화 결정을 한 뒤 8개월 여 만이다. 특히 한국철도차량은 8개 빅딜 대상 업종 가운데 가장 먼저 통합을 마친 업종이라는 상징성도 갖게 됐다.
한국철도차량 출범으로 철도차량산업의 제1차 구조조정은 마무리 됐다. 겉모양새는 그럴 듯 해 보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였다. 무리하게 서둘러 추진된 통합의 문제는 출발 직후부터 불거졌다. 통합에 앞서 3사는 자발적으로 회사 인력 10%를 감축하기로 하는 등 사전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로 합의를 했는데, 시일이 촉박한데다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직원들의 반대로 문제를 마무리 하지 못한 가운데에서 억지로 뭉쳐진 회사의 모양새가 된 것이다.

◆‘한 지붕 세 가족’에 화목은 없었다
4:4:2의 지분에 따라 3사 경영진이 공동경영체제를 진행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노동조합은 통합하지 못했다.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 제목처럼 통합법인은 현대정공 창원공장·대우중공업 의왕·한진중공업 부산 등 3개 지역 노조가 공존하는 형태가 됐다. 당연히 10% 사전 인력감축에 각 사 노조의 입장은 첨예했다. 현장직 고용승계 문제뿐만 아니라 업체별 직원들간 임금격차, 서로 다른 단체협약 등 화학적 결합을 유도하려해도 물리적 결합을 위한 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합이 이뤄졌으니, 불을 보듯 뻔한 예정된 갈등이었다.

조직의 안정과 합의가 있어야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해외자본 유치 등 회사 경영 안정화를 위한 후속 작업과 생산조직 개편 등 제2차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는데, 노조의 반대로 회사 경영은 사실상 중단됐다.

경영진들도 부실자산 처리 등을 놓고 각사의 입장만 대변하느라 구조조정이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회사의 경영상황은 바닥으로 급락했다.

불과 1년 만에 한국철도차량은 부도설에 휩싸였고, 어렵게 빚을 갚아 연명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3개사는 손실 분담금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자금난을 부채질했다.

2000년 10월부터 3개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노조의 요구안은 △기존사 수준으로의 단체협약 승계 △노조와 합의 없는 구조조정 반대 △임금 기본급 11만5000원 인상 △파업손실분 보전 요구 등이었다.

◆퇴직인원 대다수가 젊은 관리직···임원은 없어
총파업이 벌어지기 전까지 구조조정의 핵심인 고용조정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국철도차량의 적정인력은 1819명으로 추산됐으나 2000년 말까지 524명을 초과한 2343명이 근무했다. 통합 이후 156명을 퇴직시켰지만 생산직은 노조 반발로 16명에 그쳤고, 나머지 140명은 관리직이었던 데다가 이 가운데 112명이 젊은 층인 과장급 이하였고, 임원은 최소 한 두 명이었다.

회사가 향후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감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했다. 당시 한국철도차량은 통합 이전 3사가 출혈경쟁으로 따낸 저 수익 물량을 털어내는 한편, 통합에 따라 정부가 합의한 데로 적정 수준의 수익이 보장되는 신규 물량을 확보해야 했다. 무엇보다 1998년 11월 한국이 최초로 수주한 해외 프로젝트인 홍콩 전동철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해야 했다. 이 프로젝트는 계약금액 1억 달러 이상인 데다가, 트랙 레코드를 중시하는 해외 수주사업에 있어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 해야만 후속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노조의 장기 파업에 따른 생산 활동이 중단과 국내외 수주영업의 부진으로 모든 것이 어긋났다. 적정 수준의 물량을 보장해 주겠다던 중앙정부의 약속과 달리 철도 운영기관들은 한국철도차량이 독점을 이용해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업체에게 물량을 넘겼고, 이로 인해 3개사 경쟁체제 상황에 비해 나은 게 없는 저가 수주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됐다. 여기에 홍콩 전동철 프로젝트 또한 최소 납기 2개월의 납기지연 사태가 우려됐다.

노조의 집단이기주의와 사측의 무능력, 정부의 무관심이 합쳐져 한국철도차량은 불과 1년 만에 ‘주인 없는 회사’의 해악의 독버섯이 피어났다. 서둘러 책임경영 체제로 변신하지 못할 경우 현 상태의 한국철도차량은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직면했다. 한국철도차량이 무너지면 한국 철도차량제작산업 자체가 붕괴된다. 해외에 매각할 경우 한국의 철도산업은 외국에 고스란히 넘겨줄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도 빅딜의 환상에 젖어 있다가 산업을 망가뜨렸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몸이 달아올랐다.

◆정부, 강압적 구조조정 실패 인정
2000년 12월 1일, 한국철도차량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뒤늦게나마 사측이 더 이상의 파업은 용인할 수가 없다는 강경입장으로 돌아섰지만 이는 다음 수순을 위한 절차였다.

곧이어 정부는 한국철도차량에 책임경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경영 참여사인 현대와 한진에 인수를 제안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부 주도의 무리한 구조조정이 실패했음을 정부가 인정한 순간이었다.

2001년 8월 현대자동차그룹은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하고 있던 한국철도차량 지분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지분 인수로 현대차그룹은 한국철도차량의 주인이 됐다. 사업을 떼어준 지 3년 여 만에 되찾았다.

앞서, 정부의 요구로 재계는 철도차량사업을 빅딜 대상을 내놨을 때 시장 점유율이 가장 큰 회사로 단일화 하는 방안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 방안을 유지했다면 이미 그 때 철도차량산업은 현대에게 넘겨야 했다. 하지만 다른 두 업체의 이기주의와 현대에 몰표를 줄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이 맞물리면서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그나마 애써 키워온 사업은 주인 없이 3년간의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무너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철도차량산업 관계자는 “그 때의 3년은 한국철도차량산업의 암흑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그만큼 철도차량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적었고, 업계의 상황이 반영 안 된 무리하고 강압적인 구조조정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