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나도 없어서 남에게 빌려서 주는 것이니, 꼭 갚아라. 여기 차용증이다. 도장을 찍어라.”
1년치 학비와 생활비를 한달만에 모두 써버린 아들 앞에서 어머니는 단호했다. 당시 대학생이던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창업자는 매서운 모습의 어머니 앞에서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30대에 연봉 1억5000만원을 받는 투자의 귀재가 됐다. 동원증권 시절에는 최고 약정고를 올려, 최연소 지점장 발령을 받았다. 경기가 좋아도, 나빠도 그의 고객은 투자수익을 얻었다. 남들과 반대로 움직이는 ‘청개구리 투자법’으로 높은 승률을 올리며 ‘압구정동 신데렐라’로 불리기도 했다.
1997년 박 창업자는 미래에셋창업투자와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닥치며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굴지의 대기업이 무너졌고, 한국의 국가 신용도는 추락했다. 주식시장도 바닥을 쳤다. 이때에도 박 창업자는 ‘청개구리 투자’로 도약의 기회를 마련했다.
우량기업의 주가는 반드시 오를 것이라고 예측한 그는 1998년 뮤추얼펀드 운용회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했다. 그해 말 출시한 ‘박현주 1호 펀드’는 불과 2시간만에 한도액 500억 원이 모두 팔렸다.
1년 만기 후 수익률은 80%에 달했다. 이후 박 창업자는 사모투자펀드, 부동산투자펀드 등 국내 최초의 수식어를 단 상품을 끊임없이 개발했다.
박 창업자의 등장 이후,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도입한 ‘적립식 펀드’는 셀러리맨, 주부까지 펀드 투자자 대열에 합류시켰다.
업계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주식이 합리적인 투자의 대상'이라는 인식의 대변화를 가져왔다.
“바르게 벌어서 바르게 쓸 때, 돈은 꽃처럼 아름답다. 돈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돈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미래에셋이 있다. 돈은 꽃이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은 현재 증권, 생명, 자산운용 등 3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2014년 자산 규모가 47조5058억원에 달한다.
2015년 12월에는 KDB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과감한 베팅력과 결단력으로 승부사 기질을 발휘한 그는 “KDB대우증권 인수를 계기로 야성(野性)이 사라져가는 한국 경제에 ‘기업가 정신’을 다시 불어넣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존자원이 없고 국가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가장 선도적이어야 할 자본시장조차 모험과 도전을 두려워하는 풍조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1년의 절반은 해외에서 지내는 그는 위기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임직원에 대한 당부의 말을 편지에 실어 보내는 ‘편지경영’으로 유명하다. 2015년 3월 호주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박 창업자는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미래에셋은 그동안 장기성장을 위해 단기이익을 포기하면서 아시아 회사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다. 혁신은 관계당국이 해주는 게 아니고, 우리 스스로가 자기 부정을 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2개의 눈을 선물했다. 하나는 현재를 보는 눈이고, 하나는 통찰력을 갖고 미래를 보는 눈이다. 우리 모두 2개의 눈을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