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 지난 1969년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췄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47년만에 국회에서 부활했다.
더민주의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선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23일 저녁 7시경 시작된 본회의에서 한시간이 넘도록 마이크를 잡고 있다.
필리버스터란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거나 의사진행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행위로, 장시간 연설·신상발언, 동의안과 수정안의 연속적인 제의, 출석거부, 총퇴장 등을 통해 등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거부권 행사다.
외국에서는 1854년 미국 상원에서 캔자스, 네브래스카 주를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을 막기 위해 반대파 의원들이 의사진행을 방해하면서부터 정치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73년 폐지되기 직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1964년 4월 동료인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통과 저지를 위해 5시간 19분 동안 쉬지 않고 의사진행 발언을 한 일화가 유명하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정치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DJ 연설 끝에 회기 종료로 인해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는 무산됐다.
이후 1969년 8월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0시간15분 동안 발언을 해 법안 저지를 시도한 것이 유명하다. 그러나 박 전 의원의 분투에도 불구, 3선 개헌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이날 더민주의 필리버스터의 첫 포문을 연 김광진 의원은 만 34세로 현재 더민주 내 최연소 의원으로 8시 20분 현재 1시간이 넘도록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소위 체력전에서 가장 젊은 의원을 앞세워 여당의 진을 빠지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의원은 이날 연단에 올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의 이유로 든 '북한 테러위협 증가에 따른 국가비상사태로 간주'한 것과 관련 "(앞서) 국가비상사태로 선포한 사례를 보면 10월 유신의 서막과 종말을 알린 1972년 12월과 1979년 10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3차례인데, 지금이 통상적 방법으로 공공의 안녕과 입법활동이 불가능한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수 있겠느냐"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4차례 핵실험과 6차례 장거리 미사일발사가 이뤄진 상황에서 우린 상시적 국가비상사태에 해당된다"면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국정원이 언제라도 정치개입을 할 수 있는 극악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을 시작으로 무제한 토론이 일단 시작됨에 따라, 본회의는 자정을 넘겨 차수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에도 무제한 토론 종결 선포 전까지 산회하지 않고 회의를 계속한다.
또한 의원 1인당 1회에 한정해 토론할 수 있으며 상대 당 의원들이 빠져나가 본회의 개의 의사정족수(재적 의원의 5분의 1)가 미달하더라도 토론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이날 필리버스터를 끝내려면 토론에 나설 의원이 아무도 없거나, 국회 회기가 종료되거나, 재적의원 5분의 3(176명) 이상의 찬성(76명) 찬성이 있어야 한다. 사실상 토론자가 계속 있으면 최소한 24시간은 토론이 보장되는 것이다.
다만 무제한 토론이 종료되면 해당 안건은 즉시 표결에 부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