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83년 녹십자는 한국 제약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중대한 발표를 한다.
12년간의 연구 끝에 B형 간염 백신인 ‘헤파박스’를 개발한 것이다.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는 세번째였다. 헤파박스는 13%에 달하던 한국인의 B형 간염 보급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60여개 국가에 보급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접종되는 B형 간염 백신이다.
녹십자에서는 헤파박스 개발로 수익이 늘자,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국내 연구인력 수준은 신약 개발은커녕 복제의약품을 만드는 것도 힘에 부쳤기 때문에 제약사들은 대부분 외국의 신약을 수입해 판매했다.
이런 때에 미국에 투자해 단기간내 연구개발 능력을 대폭 끌어올리면 회사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른 사업에 투자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도 경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목암(牧岩) 허영섭 녹십자 창업자는 숙고 끝에 모두의 예상을 깬 결론을 내렸다. 민간 연구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환원, 국내 생명공학 연구 기반을 조성하고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이게 해야 한다.”
목암은 미국에 우수한 인력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척박하더라도 한국에 연구소를 만들어야 연구성과와 연구인력이 한국에 남아 있을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구소가 바로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목암생명공학연구소’다.
경기도 개풍 출생인 목암은 1964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1968년 독일 아헨공과대학교(Aschen University of Technology)을 졸업한 후 1970년 박사과정을 마쳤다. 독일 유학시절 한국의 보건환경에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귀국 후 녹십자를 설립해 수입에 의존하던 필수 의약품을 국산화하는 데 기여했다.
목암은 녹십자를 통해 헤파박스 외에도 수두 백신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개발하고, 인플루엔자 및 신종플루 백신개발에도 성공했다. ‘백신의 자급자족’을 넘어 세계시장에 진출해 한국이 세계인에게 양질의 백신을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 제약·생명공학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목암은 “태어나서 100세 어른이 될 때까지 건강에 관한 가장 우수한 토탈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평생을 신약 개발에 매진했다.
그는 “잘한 직원에게 더 많이 보상한다”는 미국식 보상제도가 앞다퉈 도입될 때, “모든 임직원은 잘나고 못나고없이 같이 가야 하는 식구”라는 철학으로 팀과 부서별 성과를 감안하는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었다.
임직원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며 맺은 열매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목암은 언제나 직원들의 인화를 중시하는 기업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