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최태섭 “남을 돕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2016-0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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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25)

최태섭 한국유리공업 창업자[.]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이 난리통에 무슨 돈을 갚는다고 이러십니까? 갚을 필요 없습니다.”

“난리통에 내가 죽으면 돈을 갚지 못할 테지, 어서 받으십시오.”
한국전쟁은 불시에 터져 순식간에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피난민들로 난리통인 이 때 빌린 사업자금을 갚겠다며 홀로 은행을 찾는 사람이 있었다. 한국유리공업(현 한글라스) 창업자인 최태섭 회장이었다. 은행 직원이 하는 수 없이 돈을 받자, 최 회장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이 끝난 뒤 제주도에서 군부대에 생선을 납품하는 원양어업에 뛰어든 최 회장은 사업자금 융자를 신청하기 위해 은행에 찾아갔다.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은행장이 1·4후퇴 때 빌린 돈을 갚고 피란을 간 그를 알아보고, 결국 무담보로 2억원을 융자해 줬다. 무언가를 바라고 지킨 신용이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그는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1910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최 회장은 국내 기업가 가운데 가장 올곧고 정직한 성품을 가진 기업가로 기억된다.

그는 “우리 땅에서 나는 원료로 국가 재건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며 두명의 동업자와 의기투합해 1957년 한국유리를 설립했다. 그 해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판유리를 한국 원료와 기술로 국내 최초 국산화에 성공했다.

1970년대 들어 판유리뿐 아니라 자동차 등에 쓰이는 특수유리도 생산하며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수입만 하던 유리를 수출까지 하면서부터 최 회장은 1976년에 유리 연구소를 설립해 초박판 유리 및 뉴세라믹 등 최첨단 유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유리 하나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기업이 사업다각화에 눈돌릴때에도 한가지 사업에만 전념했다. 유리관, 유리솜, 유리장식 등 유리 관련 제품을 만들어 전문성을 확보했다.

최 회장은 직원에 대한 책임감도 남달랐다. 1969년 기업공개시 친인척의 지분이 10%가 넘지 않도록 했으며 노동조합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한국유리 노조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1년에 만들어졌지만, 회사 경영층과 큰 갈등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일용직의 점심식사비는 남겨두는 그를 보며 노조위원장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더 가진 사람은 그것이 힘이든, 돈이든, 자식이든 상관없이 그것을 사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즐겨했던 최 회장은 자신의 소신대로 기업 이윤의 20%는 사회에 환원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남을 위해 쓰지 않으면,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비록 가진 것이 얼마되지 않아도, 남을 돕는 데 자기가 가진 것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참된 부자다.”

199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가 남긴 말 한 마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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