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서민들의 아랫목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건 연탄이었다. 그전에 쓸 수 있었던 연료라곤 산에서 베어 온 장작이 전부였다. 한평생 국가 에너지원 개발에 힘썼던 해강(海崗)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자는 ‘서민 연료’인 연탄을 보급하며 춥고 서럽던 시절에 온기를 보탠 기업인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 가장으로서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해강은 대구상고를 중퇴하고 일했던 연탄회사에서 사업의 단초를 구상했다. 당시 땔깜으로 쓰고자 마구잡이 벌목이 이뤄지곤 했는데, 그는 이대로 둔다면 우리 산림이 황폐화될 것이 분명하기에 우선 연탄의 보급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잘사는 나라는 산림이 푸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 후인 1947년, 해강은 민족자본으로 국내 최초의 연탄 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대구에 설립, 연탄의 대량생산 및 보급에 앞장섰다.
해강은 수익성이 좋아 보이는 다른 산업으로 진출하는 대신 연탄, LPG 등 서민 연료를 공급하는 데에 집중했다.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 확보가 국력의 기본이다”며 대체에너지 보급에 집중했다. 1983년에는 대구도시가스와 서울도시가스를 설립, 천연 연료로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해강은 50여 년간 에너지 사업에 헌신하며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3월에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86세로 영면할 때까지 계열사 20여 개의 대성그룹을 키워낸 해강의 경영철학은 ‘한 우물 정도경영’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을 줄여 ‘대성’이라 지은 회사명에서도 이러한 그의 뚝심을 읽을 수 있는데, 그는 항상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경영은 있을 수 없다. 체형에 맞는 사업을 일구어 천천히 정도를 걷겠다”는 지론을 강조했다.
1960년대에 미국의 한 반도체 회사가 찾아와 인수 의사를 타진했으나 단박에 거절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문경새재의 대성산업 소유의 땅을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제안이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성그룹은 청정 산림지역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고자 한다”는 주흘산 입구 푯말에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 사업을 추진했던 해강의 사명감을 엿볼 수 있다.
“가보니 길이 있더라”는 말을 즐겨했던 해강은 절벽 아래 떨어졌어도 용기를 내어 도전했고 매사에 성실과 정직을 실천했다. 정도경영을 바탕으로 대성을 한국의 에너지 대표기업으로 만들고 싶었던 해강은 2001년 병상에 누워 “인생은 유한하지만 기업은 영원해야 한다”는 필담 유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