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나라살림에 대한 엇갈린 평가

2015-12-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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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며느리가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감 놔라 배 놔라하면 심사가 편치 않다. 뒤주에 쌀이 반쯤 차 있다고 하자. 어느 시어머니는 “쌀이 반절이나 있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성격이 깐깐한 시어머니는 “쌀이 반절밖에 없네”라면서 나무랄 수도 있다.

컵의 물이 반절이 남아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반절이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누구는 반절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물이 그냥 마시는 물이 아니라, 위기상황에서 불을 꺼야 하는 소방차의 물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에는 낙관적인 시각보다는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더 많아질 것이다.

재정은 소방차의 물과 같아 불이 났을 때, 출동해서 불을 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경기가 침체됐을 때 정부 재정을 풀어 임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복지서비스를 통해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분들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경기의 하락폭을 줄여주는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정은 건전한가? 소방차의 물이 얼마나 차 있는가? 밖에서는 상당히 너그럽게 평가한다.

지난 11월초 OECD에서 발간한 ‘2015년 재정상황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다른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규모 및 추이면에서 양호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8일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Moody‘s)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한단계 상승시켰다. 전체 10개의 등급 중에서 위에서 세번째 등급을 받아 역대 최고 등급을 받았다. 특히 일본, 벨기에, 대만 등을 제치고 세계 8위에 해당하는 등급을 받은 것이다. 무디스는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도 양호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밖에서는 이처럼 너그럽지만, 안에서는 우리나라 재정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이 많지 않다. 경제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2%대로 하락했고, 낮은 출산율과 높은 고령화 추세는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국민연금 수급자의 증가에 따른 복지지출의 증가와 남북통일에 대비한 재정 여력의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밖에서 들려오는 칭찬이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MB정부가 출범한 지난 2008년부터 박근혜정부 4년차인 2016년까지 9년간 우리나라 재정구조의 변화 추이를 통해 판단해 보자.

먼저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성장률을 높이는데 기여할 교육예산과 연구개발(R&D) 예산의 비중이 하락추세여서 걱정이다.

지난 MB정부 5년간 연평균 10.3%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인 R&D 예산은 2013년부터 4년간 연평균 4.5% 증가한 반면, 2016년에는 1.1% 증가에 그쳤다. 교육예산도 비슷한 추세로 급락했다.

또 재정 경직성이 심해지고 있다. 법적으로 반드시 지출할 수밖에 없는 기초연금, 공무원연금, 이자 등 의무지출의 비중이 전체 예산의 47.4%까지 증가했다. 재정의 경직성이 심해지면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여력(fiscal space)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부 재정이 119 구급차의 역할을 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세입 측면에서는 조세부담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07년 19.6%까지 높아졌던 조세부담률은 2016년 18.0%로서 2008년부터 시작된 하락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세금이 걷히는 속도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느려지고 있다는 것인데, 재정 건전성의 기초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밖에 재정적자가 고착화되고 있다. 재정수지 적자는 2016년 -36.9조원을 기록해 2008년부터 9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2017년에도 확대재정 정책의 기조속에서 재정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10년 연속 재정적자가 기정사실화 됐다.

마지막으로 5년 단위 재정계획의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다. 2004년 참여정부 초기에 5년 단위 중기재정계획을 처음 시도한 이후 올해가 12년째지만, 목표치와 실적치간 괴리가 확대되고 있다. 단년도 예산편성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본래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해법은 뭘까? 먼저 5년 단위 재정계획을 새 정부가 출범하기전에 매 5년마다 평가하도록 의무화해 ‘5년 단위 계획’의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R&D와 교육 등 총요소생산성 향상과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예산에 대해서는 하락 추세를 완만하게 관리하는 등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외에 조세부담률이 자연스레 증가할 수 있도록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세원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세입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

내수 활성화를 통해 경기가 좋아지고 이를 통해 소비세와 소득세가 증가한다면 금상첨화다. 소방차의 물은 항상 절반이상 채워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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