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대한민국 최고 흙수저

2015-11-2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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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열 실장]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금주의 인물은 지난 일요일 돌아가신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산업화를 핑계로 방구석에 팽개쳐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도록 했고, 그로 인해 경제발전도 지속가능해졌다. 소위 말하는 ‘포용적 성장’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했다는 얘기다.

필자는 1994년 가을 YS의 청와대에서 국민제안 우수자로 뽑혀 그와 함께 칼국수를 먹었던 추억이 있다. 청와대 칼국수는 금새 배고픈 게 흠이었지만, 특이한 경험이었다.

민주화를 위한 헌신과 문민정부 출범, 역사 바로세우기, 하나회 숙청 등 YS가 남긴 치적이 많겠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도입을 통해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로 인해 부패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고, 소수의 파워엘리트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시대와 결별할 수 있었다. 과거와의 단절이 말로는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오랜 민주화 투쟁을 거쳐 단련된 ‘결기’와 ‘담대한 용기’가 금융실명제 도입과 같은 개혁적 조치를 가능케 했다. 요즘 지도자들과 차별화되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원래 금주의 인물로 내정된 분은 고(故) 아산 정주영 회장이다. 아산은 100년전 11월25일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아산리에서 소작농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시쳇말로 ‘흙수저’다. 그의 호 ‘아산’은 고향 마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창의적 아이디어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세계적 기업을 일궈냈다.

아산은 스스로를 ‘부유한 노동자’라고 불렀다. 맨 몸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열심히 노력해 기업을 일구는 한편 부를 거머쥐었지만, 결국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노동자라는 겸양의 표현이었다.

또 그는 기업을 키워 경제성장에만 기여한 게 아니다. 남북경협과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닦았던 선구자적인 노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세워 의료서비스 수준을 향상 시켰고, 장학사업에도 일찍 뛰어들었다. 필자도 33년전인 고3 시절에 그 수혜자 중 한명이었다.

요즘 수저 이야기가 유행이다. 돈 많고 잘난 부모를 둔 아이들은 ‘금수저’고, 그렇지 못한 평범한 아이들은 ‘흙수저’라는 것이다. ‘은수저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는 서양 속담에서 비롯된 얘기일 것이다.

모든 구성원의 재산이나 소득이 동일할 수는 없으며, 그런 사회란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모두 사회속에 존재하지만 존재 자체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금수저로 이동할 수 있는 사회라면 문제가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한번 흙수저로 태어나면 은수저, 금수저로 올라가기 어렵고, 계층이동이 어렵다는 좌절감과 패배의식이 팽배하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계층이동성이 실제 과거에 비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미국과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도 ‘은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 같은 새로운 벤처기업이 탄생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역동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수저 물고 태어나도 큰 문제가 안 된다.

우리나라에도 흙수저 물고 태어났지만, 세계적 기업인으로 성장했던 ‘아산’과 같은 스토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 최근 인터넷과 정보화 흐름속에서 스타기업으로 떠오른 네이버, 다음, 넥슨, 카카오 등이 좋은 예다.

스스로 ‘흙수저’라고 자조하면서 패배의식에 빠진 지금의 청년세대에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려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부자들의 기부는 장려하고 활성화하면서, 상속 증여 부동산 등 불로소득과 관련한 세제는 보완돼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켜 교육과 자기계발의 기회는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한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실패가 자산이 되는 사회,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고 나서 비로소 청년에게 도전 정신을 주문해야 한다.

우리의 후배들과 자녀들이 ‘흙수저’ 들고서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흐뭇한 풍경이 많아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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