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화의 거산(巨山)’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들었다.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은 22일 0시22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했다. 향년 88세.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열로 입원했다가 상태가 악화됐고,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패혈증과 급성신부전으로 서거했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공식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생전에 그가 즐겨 쓴 ‘대도무문(大道無門·큰 길에는 문이 없다)’이란 휘호처럼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최연소 국회의원(만 26세), 최초의 의원직 제명 조치, 역대 최다 9선 국회의원, 3번의 야당 총수, 문민정부 첫 대통령 등의 신기록을 남겼다.
이후 ‘변절자’란 비판에도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청와대의 주인 자리를 꿰차는 ‘정치적 승부사’ 면모를 보이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임기 초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등을 일사천리로 해낸 것도 ‘정치 9단’ YS이기에 가능했다. 임기 말 IMF 환란과 차남 현철 씨의 비리 혐의로 곤욕을 치렀지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YS 키드’들에겐 최근까지도 정치적 아버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YS의 서거로 인해 평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와 함께 40년 동안 한국 정치사를 쥐락펴락한 ‘3김(金) 시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게 됐다. 3김 중에 홀로 남게 된 JP는 이날 일찌감치 빈소를 찾아 한시간 가량 유족을 위로하며 ‘회자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YS의 빈소는 이날 여야를 막론하고 하루종일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김영삼 대통령 기념사업회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 상도동계 인사들은 차남인 현철 씨와 함께 상주를 자처하며 빈소를 지켰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방문 중 서거 소식을 접하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23일 새벽 귀국 예정이며, 국내 도착 이후 빈소를 직접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다. 26일 국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도 참석할 전망이다.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중국 신화, 일본 교도 통신 등 주요 외신들도 “군사독재에 맞선 첫 ‘문민정부’ 대통령” “금융실명제 등 과감한 개혁 이룬 인물” 등으로 YS 서거 소식을 긴급 보도했다. 반기문 유엔총장도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투명하고 건전한 발전을 위해 과감한 개혁을 이룩하신 분”이라고 애도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김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國家葬)으로 치르기로 했다.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이 거행된다. 장지는 서울현충원이다. 국가장 절차에 따라 정부는 빈소를 설치·운영하며 운구, 영결식, 안장식을 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