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멀지만 가까운 나라, 르완다

2015-1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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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민 주르완다대사 [사진=외교부]


박용민 주르완다대사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외면하고 왕정을 유지하다가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외세의 식민 지배를 당한 나라.

독립 후에는 전 세계가 놀랄 규모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나라.

그 다음에는 전 세계가 놀랄 속도로 발전을 이루고 있는 나라. 작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나라.

평방킬로미터당 450~500여명의 조밀한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 대대로 농업국가였지만 근래에는 ICT에 대한 집중투자로 탈근대의 파도를 멋지게 타보겠다는 전략을 추구하는 나라.

불행히도 이렇다 할 지하자원조차 없는 나라. 그러나 그 불행을 근면과 교육열로 돌파하겠다는 열의를 지닌 나라.

이 설명은 우리나라에 관한 것이기도, 르완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중동부에 위치한 르완다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저널리스트 구레비치의 표현처럼, “대부분의 지도에서 나라 이름을 나라 밖에다 써야 하는” 작은 나라다. 그런데도 르완다의 꿈은 작지 않다.

카가메 대통령은 말한다. “작은 나라는 있지만 작은 국민은 없습니다. 크게 생각하고 크게 행동하는 선택은 우리 모두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사이즈는 운명이 아닙니다. (생략) 저는 작은 나라에 태어났다고 자랑스러웠던 적도 부끄러웠던 적도 없습니다. 작은 나라들이 큰 나라들보다 선천적으로 더 낫다거나 나쁘다고 믿지도 않아요. (생략) 작은 나라는 혁신을 하고 국민들을 동등하게 참여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면에서는 이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나라들은 실수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무도 도와주러 달려오진 않거든요. 크게 보면, 작은 나라의 운명은 오로지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작은 나라의 고단함을 잘 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카가메 대통령의 이와 같은 말은 큰 울림을 지닌다.

누군가 당신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코끼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듯이, “사이즈는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이즈에 관한 자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르완다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르완다라는 나라 이름은 Kwanda라는 르완다어에서 유래했다. “점점 커진다”는 의미의 동사다.

르완다는 세계은행이 2014년 발표한 기업환경평가에서 전체 189개 국가 중 32위를 차지했다. OECD 원조효과성 평가는 2011년 이래 최고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르완다를 잘 모르던 사람에게, 이런 평가는 놀라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르완다가 전개하고 있는 ‘우무간다(함께 노력한다는 뜻)’라는 사회변혁 운동이 새마을 운동과 몹시 닮아 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지역에 따라, 우무간다는 농경지 정리, 주택 개량, 도로 확장, 학교 설립, 마을 청소 등 다양한 양상으로 시행한다. 그 덕분인지 르완다의 방방곡곡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깨끗하다.

민관이 함께 사회변혁 운동을 전개할 때 정작 중요한 것은 깨끗한 길거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공동체가 스스로 맞을 내일을 어제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열의이고, 그런 열의 속에 냉소주의가 뿌리 내릴 틈새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르완다에서 생활하는 우리 동포들은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과거를 본다고 말한다. 그 과거란 식민지배와 전란으로 피폐한 과거, 가난하고 배고프던 과거가 아니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고 뛰던 과거, 공동체의 운명을 나의 운명과 지금보다는 좀 더 가깝게 느끼던 과거다. 이같은 이유에서일까, 르완다 정부와 국민들은 한국을 매우 친근하게 여긴다.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나라 중 유일하게 자기들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경험했던 나라, “큰 나라들”의 등쌀에 고생하는 것이 어떤 건지 아는 나라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르완다에는 근면과 자조와 협동의 정신이 숨 쉬고 있어서, 작은 도움으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이름처럼 '점점 커질' 나라 르완다를 친구로 여기고, 멀리 떨어진 나라와도 더 나은 미래를 공유하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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