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출신 배우의 시작은 차승원이다. 1988년 모델로 데뷔한 그는 카리스마 있는 얼굴과 뛰어난 비율을 내세워 금세 톱 모델이 됐다. 그는 특히 한국 최고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자신의 패션쇼에 즐겨 세우기로 유명했다. 비슷한 이미지의 김민준도 93년 모델로 데뷔한 후 남성스러운 라인의 모델로 사랑받았다. 당시 남성 모델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이처럼 거칠고 강렬한 인상과 근육질 몸매였다.
차승원이 연기자로 변신한 과정은 특이하다.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과 ‘세기말’, 드라마 ‘천사의 키스’등에 조연을 출연해 진지한 역할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화 ‘신혼여행’과 ‘리베라메’의 실패 이후 코믹 배우로 변신했다. 영화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등을 연속해서 히트 시키며 명실상부 충무로를 대표하는 코믹배우로 성장했다. 그는 일단 코믹배우로 입지를 다진 후에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 갔다. ‘혈의 누’, ‘박수칠 때 떠나라’, ‘시크릿’등을 통해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를 굳히는가 싶더니 ‘아들’과 ‘국경의 남쪽’에서는 순수하고 어리 숙한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더불어 ‘이장과 군수’와 ‘최고의 사랑’에서는 자신의 코믹 연기가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반면에 김민준은 모델 시절의 카리스마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드라마 ‘다모’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이후 드라마 ‘아일랜드’, ‘프라하의 연인’과 영화 ‘사랑’,‘톱스타’ 등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긴 했지만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실히 잡으며 배우로 자리 잡았다.
강동원과 함께 모델 에이전트 ‘더 맨’에서 활동했던 이민기도 배우로 대성했다. 모델 시절 작은 키로 타 모델들에 비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이민기는 연기자에 어울리는 개성 있는 마스크와 독특한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데뷔 초 드라마에 천착했던 그는 영화로 스펙트럼을 넓혀 ‘해운대’, ‘퀵’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한편 최근에는 영화 ‘연애의 온도’, ‘몬스터’등에 출연해 로맨스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날렵한 마스크와 저음의 목소리로 사랑받는 배우 주지훈도 역시 톱모델 출신이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모델 활동을 한 강동원에 비해 조금 늦게 배우로 변신했다. 데뷔작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궁‘이다. 주지훈이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됐을 때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주지훈이 누구야”라는 반응이 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곧 매력적인 주지훈의 캐릭터는 곧 많은 시청자를 팬으로 만들었다. 주지훈은 특유의 퇴폐적인 분위기와 저음의 목소리로 드라마 ’마왕‘, 영화 ’좋은 친구들‘ 등에서 열연, 큰 호평을 받았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 배우로 활약하며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이 외에도 모델 에이전트 ‘더 맨’에서 활동했던 임주환, 이천희등이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2008년 아쉽게 세상을 떠난 이언과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와 씬스틸러 역할을 하는 최지호도 모델 출신이다. 최근에는 이종석, 김우빈, 남주혁 등이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펼치며 모델 출신 배우의 명맥을 잇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모델 생활 때문에 이른 나이에 배우로 변신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긴 팔다리와 선명한 마스크 등 배우를 하기에 많은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부족한 연기력과 평범한 캐릭터로 도태되는 경우도 많다. 지금 배우로 데뷔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수많은 모델 출신들이 앞으로 어떤 차별 점을 가지고 선배들처럼 '진짜 배우'로 성장 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