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역사가 말해주는 만큼 파텍필립은 전통과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기술력의 매뉴팩처로 무장했다. 또한 가족 경영 중심의 회사 시스템을 유지해오며 ‘매출’보다는 ‘퀄리티’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시계의 핵심은 태엽 구동장치, 즉 무브먼트다. 시-분-초의 정확도와 내구성, 그 외 제반 부분을 완벽에 가깝게 튜닝한 기술력의 총아가 무브먼트이고 하이엔드 시계일수록 이 무브먼트 기술력에서 빛을 발한다. 오데마피게-바쉐론콘스탄틴-브레게-파텍필립 등의 시계가 대표적이다.
극히 작은 시계 통(바디) 안에 수백여 개의 부품들을 치밀한 물리학적 설계로 조합시킨 무브먼트 세계는 또 하나의 우주다. 뚜르비용같은 무브먼트는 지구의 중력 때문에 발생하는 시간의 오차조차 극복하는 놀라운 기술력이다. 충격과 먼지 등 외부로부터의 악조건에서 자생력을 강화한 것도 특징이다. 따라서 위의 하이엔드 제품들을 ‘시계의 종착역’이라고도 부른다.
파텍필립은 1839년 스위스에 정착한 폴란드 귀족 앙투안 드 파텍과 프랑스 출신의 시계기술자 장 아드리앙 필립에 의해 탄생했다. 창사이래 줄곧 ‘최고의 정확도’를 위한 시계에만 몰두하다보니 제작량이 극히 적고 희귀하다. 무브먼트 부품들을 정교하고 미술적으로 아름답게 배열하는 감각도 세계 최고다.
파텍필립을 찼다는 건 최고 지위에 올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기본 모델이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하이엔드 시계 임에도 단지 호사가들의 사치품이 아닌 ‘문화’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특히 파텍필립의 칼라트라바(Calatrava)는 드레스워치의 상징적 모델로,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 시계의 황제로 평가받는다.
일반적으로 “저 사람은 올드(old)해”라는 말보다 “클래시컬(classical)”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두 표현 모두 ‘늙고’ ‘보수적’이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하지만 ‘클래식’에는 ‘격조’와 ‘전통’ 등 보다 무게감 있는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다.
올해 바젤월드에 처음 소개된 파텍필립의 야심작 ‘칼라트라바 파일럿 트레블타임(ref.5524)’은 항공학의 선구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담았다. 블루 다이얼의 세련된 외관을 물론, 42mm 사이즈의 화이트골드 케이스가 품격을 더한다. 거기에 타임존 기능까지 있어 출장이 빈번한 비즈니스맨에게 유용한 시계다.
온통 금으로 뒤덮인 롤렉스 시계를 좋아하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취향을 세련된 격조의 파텍필립 클래식 모델로 바꾸게 한 것은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안목이었다.
마피아와 그들의 가족사를 다룬 ‘미드’ <소프라노스> 4탄에는 이런 씬이 나온다.
마피아 보스 토니 소프라노(제임스 갠돌피니 분)가 자신의 재정을 자문해주는 브라이언에게 그간 수고했다며 감사의 표시로 파텍필립을 선물한다. 토니는 혹시 상대가 너무 과한 선물이라 놀랄까봐 브라이언에게 ‘뮤직박스’라며 상자를 건넨다. 이 엄청난 선물에 브라이언은 뼛속까지 충성을 다시 한 번 외치게 된다.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가 착용했던 시계도 파텍 필립(ref.1463)이다. 이외에 할리우드 스타 찰리 쉰을 비롯한 스타 명사들의 손목에도 파텍필립이 올려져 있다.
이들 모두는 파텍 필립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가치, 다시 말해 ‘클래식’의 격조에 열광하는 것이다. ‘상품’이 아닌 ‘전통’을 판다는 파텍 필립의 취지에 뜻을 같이 하는 셈이다. 물론 파텍 필립의 오늘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차를 극복하는 제반 기술력에 대한 쉼 없는 정진과 브랜드 가치에 대한 고유의 아이덴티티 확립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파텍필립 CEO 티에리 스턴은 탄생 200주년을 맞이할 때까지 쉬지않고 다양한 신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제품을 단지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고유의 전통 또는 오리지널리티를 특화시킨 마케팅으로 현존하는 시계의 황제가 된 파텍필립은 명품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나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