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나 나올법한 일이 조선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바로 사도세자가 자신의 아버지 영조에게 의해 죽은 임오화변. 누구나 들어본 이름 사도세자, 영조는 1762년 기행을 일삼는 둘째 아들 이선(사도세자)을 뒤주에 가둬 굶어 죽게 만들었다.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제작 타이거픽쳐스)는 임오화변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이다.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 사극의 달인인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사도’는 아버지 영조(송강호)와의 갈등을 참지 못한 사도세자(유아인)가 칼을 들고 경희궁으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문근영)는 남편의 생모인 영빈(전혜진)에게 이를 고하고, 영빈은 아들과 손자인 세손 이산(아역 이효제), 즉 훗날의 정조(소지섭)를 살리고자 영조에게 위험을 알린다. 이후 영조는 사도의 세자 직위를 해제하고 뒤주에 아들을 가둬 버린다.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 여드레 만에 숨지고 만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에 짧게 등장하는 이 비극을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드라마를 더욱 강화시켰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조의 마음과 사도가 기행을 저질러야 했던 이유를 부각시켰다. 또한 영조, 사도세자, 정조 삼대에 걸친 부자지간의 심정을, 대왕대비 인원왕후(김해숙)와 영조의 중전 정성왕후(박명신), 영빈이 어떤 관계인지 짧지만 정확하게 짚어냈다.
인원왕후 역시 영조의 친모가 아니다. 대왕대비로서 영조의 즉위에 힘을 실어준 인원왕후는 경복궁의 최고 어른이었고, 건강한 영조가 신하들과 사도세자를 괴롭힐 작정으로 양위 선언, 즉 왕에서 물러나겠다고 얘기할 때마다 못마땅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빈은 매우 현명한 어머니이자 영조의 아내였다. 영빈은 아들 사도세자를 정성왕후에 보냈지만 영조가 후궁들의 치마폭에 빠져 지낼 때도 중전인 정성왕후의 환갑잔치를 챙기기 위해 마음을 쓸 정도로 집안의 평화를 우선시했다. 인원왕후는 그런 영빈이 기특하기만 했고 어릴적 총명함을 보였던 사도세자를 사랑했다. 이에 인원왕후는 영조의 양위 선언을 허락하지만 결국 사도와 세손을 살리기 위해 죽기 직전 윤허를 거둬들였다.
송강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아들에게 실망한 아버지 영조로 완벽하게 분했다. 말이 필요 없다. 고명(高名)은 괜히 전해지지 않는다.
2003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해 연기자 생활 12년차인 유아인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완득이’ ‘깡철이’ ‘우아한 거짓말’에 이어 ‘베테랑’에서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은 유아인은 송강호를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부터 영조에 대한 콤플렉스, 또 아들 이산에 대한 작은 질투심까지 완벽하게 연기했다.
문근영의 연기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가망이 없는 지아비보다 아들 이산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에서 문근영은 모성애 그 자체다. 전혜진의 모성애 연기에 버금하다.
사도에 대한 영화이자 영조에 대한 작품인 ‘사도’의 완성은 송강호와 유아인의 내면을 울리는 메소드 연기를 바탕으로 주조연의 연기가 방점을 찍었다.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홍봉한 역), 박소담(내인 문소원 역), 최민철(채재공 역), 이대연(김상로 역) 강성해(김한구 역), 최덕문(홍인한 역), 정석용(홍내관 역), 조승연(이천보 역), 이광일(민백상), 정찬훈(이후 역), 차순배(박내관 역), 김민규(김귀주 역), 최지웅(내금위장 역), 이지완(별감대장 역), 정해균(소경박수), 이신우 도광원(보조박수), 윤사비나 조윤정(비구니 역), 손덕기(홍낙인 역), 아역 안정우(4세 사도), 엄지성(10세 사도), 세손(이효제), 신수연(어린 혜경궁), 신비(어린 화완옹주) 여기에 정조로 특별출연한 소지섭까지 모두 영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거론되지 않은 배우들 역시 모두 한몫을 했다. 소지섭은 짧지만 강렬한 연기로 심금을 울린다.
‘4대 비극’보다 더욱 비극적인 ‘사도’는 오는 16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