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결국 유죄가 확정됐다.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새정치민주연합 의원)가 20일 5년간의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전직 총리 사상 처음으로 실형을 확정받은 셈이다.
한 전 총리는 판결 직후 “정치권력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친노(친노무현)그룹의 원로 격인 한 의원이 불명예 퇴진함에 따라 특정 계파를 넘어 야권 전체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게 됐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정에서 9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 ‘대법관 8(유죄)대 5(일부 무죄)’의 의견으로,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즉각 의원직을 상실한 한 의원은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사실상 한 전 총리의 정치생명이 끝난 셈이다.
야권은 “명백한 정치탄압”이라며 격앙했다. 한 전 총리의 대법원 상고심을 지켜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판결 직후 “정말 참담한 심정”이라며 “일련의 사건 판결들을 보면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이번 사건은 돈을 준 사람도 없고 돈을 받은 사람도 없다”며 “사법부만큼은 정의와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돼주길 기대했지만 오늘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필귀정”이라면서도 “판결 내용과는 별개로 최종 대법원 판결이 있기까지 무려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은 매우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김무성 대표도 “2년을 끌어서 대법원이판결을 내렸는데, 야당 탄압이라고 하면 정말 참…”이라며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한 전 총리 사건은 검찰 기소 이후 5년 1개월, 항소심 판결 이후 2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야당이 ‘정치탄압’ 프레임을 전면에 내걸고 파상공세를 펼침에 따라 연말정국에서 이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野, ‘탄압 프레임’ 부메랑 우려…중진급 물갈이↑
문제는 야당의 ‘정치탄압’ 프레임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정정국을 고리로 한 대여전선이 범야권 지지층 결집에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중도층까지 외연 확장을 꾀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한 전 총리 사건은 검찰 기소 이후 5년이 흘렀다. 사정정국 카드가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간 지체된 한 전 총리 사건과 연결 짓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찬종 변호사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은 이념 사건이 아닌 사실관계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 전 총리 문제는 현재 재판 및 사건 중인 △권은희(모해위증 혐의) △김한길(성완종 불법 정치자금 수사) △박지원(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 의원 사건과 결을 달리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진영은 정치적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여야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으로 공천혁신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 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친노 중진급을 비롯해 현역 의원 물갈이 비율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20대 총선에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한 전 총리의 경우 2012년 총선 패배 이후 정치적 잠행을 하면서 20대 총선 불출마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한 전 총리를 비롯한 친노계 중진의 불출마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로, 공천 물갈이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여야가 차기 공천에서 도덕성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공천에 반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