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창익 기자 =중국이 13일까지 사흘간 위안화를 4.66% 전격 평가절하했다. 시진핑 정부출범 후 2년 반만에 ‘약위안’ 정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주요 외신은 이에 “워싱턴 정가가 발끈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축통화 자리를 둘러싼 달러-위안간 화폐전쟁의 맥락에서 보면 아주 중대한 사건이다. 특히 금리 인상을 통해 강달러로의 선회를 준비하는 미국 입장에서 약위안은 삼키기도 뱉기도 어려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기축통화 패권을 잡은 미국은 종이 값만으로 무한정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소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쉽게 수행했다. 중국은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공장 역할을 담당하면서 한 세기 동안 국내총생산(GDP) 규모로는 미국과 대등한 규모로 성장했다.
서로 궁합이 맞았던 미-중간 파트너십은 중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파탄 위기에 처했다. 중화경제를 등에 업고 중국이 달러의 패권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미국은 달러 가치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하며 기축통화 패권을 유지해 왔다. 패권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는 적절히 강한 달러를 유지해야 하지만 너무 많은 달러를 찍어 재정·무역, 즉 쌍둥이 적자가 심각해질 때마다 일시적인 약달러 정책으로 문제를 해소했다.
약달러 정책은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경제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유용했다. 대표적인 게 1984년 프라자합의다. 사실상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엔과 마르크화의 절상을 택한 일본과 독일은 이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2000년대 초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다. 상대만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으로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경제권을 무너뜨려야 하는 미국의 전략은 마찬가지였다.
아들 부시 정부는 당시 후진타오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월가에선 위안화의 40% 절상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프라자합의를 학습한 후진타오 정부가 급진적인 위한화 절상을 택할리는 만무했다. 후진타오 정부는 외교적인 수사로 부시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완만한 절상을 택했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GDP 규모로 미국과 맞짱을 뜰 정도가 됐다. 하지만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정권이 위협받게 됐다. 결국 시진핑 정부는 미국의 위안화 추가 절상 압력에도 불구, 반대로 위한화를 5% 가까이 내렸다. 인민은행이 즉각 부인했지만, 연말까지 10%까지 절하 폭을 넓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달러로의 선회를 앞둔 오바마 정부 입장에선 약위안은 선회 속도를 높이는 호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약위안이 오히려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강화시켜 결국은 위안화의 힘을 키우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강달러 정책을 앞두고 엔저로의 전환을 앞세운 아베노믹스를 지지한 것은 일본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판단과 동시에 아태 경제권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종의 이이제이 전략이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엔 바로 이 부메랑이 무서워 약위안을 쉽게 묵인할 수 없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시진핑의 약위안 정책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대응 방향이다. 미국이 기본적으로는 강달러쪽으로 엑셀를 밟겠지만 그 속도가 느려질 경우 달러와 반대로 움직이는 오일 가격의 추가 하락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유가 하락으로 올들어 해와건설은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30% 급감했다. 주요 수주국가가 대부분 중동 산유국이기 때문이다. 해외건설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나마 아주 작은 호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