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최서윤 기자 = 지난 5개월간 급박하게 진행됐던 그리스를 둘러싼 '극적 드라마'가 3차 구제금융 협상 합의점 도출로 일단 마무리됐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모면했지만 ‘굴욕협상’으로 그리스 내부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그림보(Grimbo·그리스와 림보의 합성어로 마치 림보를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 국면에 또 맞닥뜨리게 됐다.
그리스는 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에 따라 연금 삭감, 세금 인상, 채무상환을 위한 500억유로의 기금 조성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면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를 통해 3년간 최대 860억유로(약 108조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받기로 했다. 또 ESM 협상을 마무리할 때까지 필요한 유동성을 지원하는 ‘브릿지론’으로 120억유로를 별도로 제공받을 예정이다.
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구제금융 지원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첫 번째 일정은 그리스가 개혁법안을 15일까지 입법화하는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부가세 간소화 및 과세기반 확대, 연금 수령 연령 상향 및 극빈층 연금 폐지, 그리스 통계청의 독립성 보장, 재정 지출 과잉 시 자동 중단 등 4개 분야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법안이 승인되면 16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은행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 증액과 그리스가 발행할 수 있는 단기 재정증권의 한도 증액 여부를 결정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ESM 지원 협상을 개시한다.
17일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각국 의회에 합의안이 상정된다. 의회 승인이 필요한 나라는 그리스를 포함해 독일, 에스토니아, 핀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스페인까지 9개국이다.
20일은 ECB에 35억유로를 갚아야 하는 만기일이다. 전문가들은 이날을 그렉시트 기로가 결정되는 1차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자금을 지원받아 무사히 넘기고 나면 그리스는 합의안에 따라 22일까지 2개 법안의 입법을 끝내야 한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협상이 개시부터 타결까지 약 4주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 그리스, ‘내부반발’ 험로 직면
치프라스 총리는 당장 15일 고비를 맞게 됐다. 시리자 내 강경파인 ‘좌파연대’는 이번 합의를 '그리스의 굴욕'이라고 단정 지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파노스 카메노스 독립그리스인당 국방장관은 합의안에 대해 “독일과 연합군에 의해 쿠데타를 당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11일 치프라스 총리가 제안한 개혁안 표결 때 찬성표를 던졌던 카메노스 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내놓은 것은 험난한 개혁안 입법 과정을 시사한다.
하지만 그리스 정치권에서는 개혁입법이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집권당 내 반대세력 표를 제외한 다 해도 야권의 지지표가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리스 경제가 이를 견딜 능력이 충분한가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개혁안 리스트는 가혹한 정신적 ‘물고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008년 대비 25% 줄었고 현재 실업률도 25%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