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두 번의 반정이 있었다. 하나는 중종반정(1506년)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월화드라마 '화정'에서 전개되고 있는 인조반정(1623년)이다.
중종반정의 경우 연산군이 워낙 폭정을 일삼았기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도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명분이 있었던 반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인조반정은 현재 학계에서도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정당성과 명분이 없는 반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명나라에 대한 배신의 경우 광해군의 실리 중립외교는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평가다. 그리고 폐모살제의 경우 군주국에서 왕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모나 형제를 죽이거나 하는 것 등은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도덕적으론 약점은 될 수 있어도 반정의 명분은 될 수 없다고 학계에선 평가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현재 김재원이 연기하고 있는 능양군, 즉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능양군도 능양군 시절 인목대비를 폐하라는 정청에 참여했다는 것. 즉 폐모살제의 죄에 있어 능양군도 공범인 것.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인조반정에 있어선 현재 학계에서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인조반정이 있었던 당일 당시 광해군은 이귀와 김자점 등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상소를 받았다. 그리고 당시 광해군에겐 도성을 지키고 궁궐을 호위하는 수천 명의 최정예 병사들이 있었다.
상소를 받은 즉시 광해군이 명령만 내렸으면 인조반정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이거나 죽일 수 있었다. 즉 인조반정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반정군은 1300명 정도였는데 그것도 절반 정도는 길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 모은 오합지졸들이었다.
하지만 당시 광해군이 보유하고 있고 즉시 인조반정 진압에 동원할 수 있는 병사는 수천명으로 모두 최정예 병사들이었다.
이렇게 광해군은 인조반정을 막고 연루자들을 잡아들이거나 죽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수단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전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했다.
이는 아직도 학계에서 미스터리로 여기고 있다. 도대체 광해군은 왜 인조반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전보고를 받고도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 이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지만 확실한 것은 인조반정이 실패하고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었다면 당시 조선은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참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조반정으로 현재 월화드라마 화정에서 신은정이 연기하고 있는 인목대비의 원한은 풀렸을지 몰라도 대다수 백성들의 입장에선 광해군이 계속 왕위에 있는 것이 훨씬 좋았다. 대다수 백성들의 입장에선 인조반정은 또 다른 대비극의 시작이었다.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 월화드라마 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