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아껴 사는 돌담의 찔레꽃
사금파리만한 창가 나무의자에 모시처럼 앉아
문밖 강바람이나 저물녘 물소리 곁에서
빗소리 젖은 책을 읽다 촉촉한 행간
고양이처럼 졸다 커피를 탄다
너의 머리카락에서 맡는 오래된 커피향
손을 잡으면 커피에서도 찔레꽃이 피고
커피를 마시다 비는 그치고
너 오던 날 심은 돌배나무잎마다 배꽃이 피면
가벼워진 그림자 뒤를 밟아 산사에나 다녀올까
바람 성성한 부채 하나 들고
세월을 부치다 날리다 그렇게 살다
어느새 너는 마당가 국화 서리가 내리고
나는 해 긴 날의 노을로 지다보면
우리 그만 잊을 만큼 사랑했고
더욱 그리워 할 만큼 미워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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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면서부터 집을 짓고 있다. 콘크리트 바닥 기초를 하고 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창을 달고 지붕을 덮고, 정신없이 몰아쳤다. 그렇게 바삐 사는 와중에 잠깐 고개를 돌려보니 언덕 위 찔레꽃이 흐드러졌다. 장미향보다 짙은 꽃향이다. 저녁 어스름에 촉촉히 내리는 봄비, 커피를 탄다. 커피에서도 찔레향이 난다. 참 좋은 여유다. 요만큼 살면 좋겠다. 커피를 마시다 책을 읽다 졸다가 바람 좋아 꽃 피는 날 모시적삼 풀먹여 빳빳히 다림질해 입고 가까운 산사에도 다녀오고, 그러다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은 늦가을 국화같이 늙고 나도 노을처럼 질테고... 사랑하고 미워한 것들, 그리 사는 것들 다 부질없는 것인데 요즘 너무 바삐 산다.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