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국회가 시행령 등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 국회법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개정안 입법이 완료될 경우를 상정,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할 것"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 소지를 지닌 채 그대로 정부로 이송돼 올 경우 여야 합의를 거쳐 211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하더라도 위헌 논란이 있는 법률을 공포할 수 없으며,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률을 거부하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정면돌파'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번 국회법 개정 과정에 대해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특벌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을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서 '연계전략'을 펴는 야당의 요구를 여당이 받아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자 졸속입법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정부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면 정책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향후 야당의 연계전략으로 시행령 수정 요구권이 빈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국회에서도 이번 개정안과 동일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에 대해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다"며 행정입법을 견제하려는 국회시도가 위헌 논란 때문에 무산된 사례를 거론했다.
지난 2000년 '시행령과 모법(母法)이 어긋날 경우 국회가 시정을 요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가 위헌 논란으로 인한 일부 의원의 반대로 '시정을 요구한다' 대신 '그 내용을 통보한다'로 수정됐던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요구를 정부가 따라야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의 문구가 '강제성'을 띄고 있는지에 대한 여야 입장을 통일해달라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여당의 입장대로 '강제성이 없다'는 쪽으로 정리가 될 경우 국회법 자체가 효력이 없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 있다. 그러나 '강제성이 있다'고 여야가 의견을 모을 경우 정부의 행정입법권뿐 아니라 행정입법에 대한 법원 심사권까지 침해할 수 있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청와대는 앞으로 국회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한 설명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여론전에 나설 태세다.
박 대통령이 "지금 북한이 내부 숙청으로 공포정치가 극에 달하고 있고 핵개발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시험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런 때일 수록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점도 여론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다만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2이상이 통과시킨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자칫 역풍도 우려되고 황교안 총리 후보자 청문회도 목전에 있어 결정이 쉽지 않다는 내부 고민도 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