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환율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 19일 예고도 없이 ‘5~6월 자산매입 일시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 유로화 절하를 유도한 것이 환율 전쟁에 불을 지폈다. 지난 1분기 경기 부진 이후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한 미국과 완만한 회복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이 ECB의 '선제공격‘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CB는 자산매입 일시 확대가 “유동성을 고려한 조처”라며 “최근 유럽의 국채금리 급등세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채권 투매세 확산과 유로화 강세를 ECB가 관망할 수만은 없던 것 아니냐”는 의견이 팽배하다. ECB의 이 같은 계획으로 유로화는 1.14달러 수준에서 1.11달러 중반까지 떨어졌고 달러화는 오르고 독일 국채금리는 다시 급락했다.
ECB의 이러한 공격적인 완화 기조는 유지될 전망이다. 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유로존의 성장률은 0.4%를 기록했다. 2년 만에 최고 수준이지만 미국이 2011년 말에 금융 위기로 잃어버린 성장률을 회복한 것에 비하면 유로존은 4년이나 뒤처져 있는 것이다. 또 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금리인상 전망도 불투명하다. 연준은 6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했다. 앞서 연준은 20일 공개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최근 경기 부진이 지속될 수 있다는 다양한 근거들이 나왔다”면서 “달러화 강세에 따른 순수출 감소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감소가 예상보다 크다“고 전했다. 경기 회복이 둔화한 배경으로 달러 강세를 지목한 것도 주목된다.
만약 미국의 경기 회복세가 붕괴하면 달러화는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올랐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떨어질 수 있다고 씨티그룹의 스티븐 잉글랜더 수석 외환전략가가 지난 18일 경고했다. 그는 미국에서 2개 분기 동안 생산성이 하락한 것에 주목하며 “제로금리 상황에서 Fed는 다시 ‘4차 양적완화(QE4)’를 내놓는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환율 전쟁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22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연간 80조엔에 이르는 현재의 대규모 완화정책을 지속할 것”이라며 “‘물가상승률 2%’ 목표를 위해 필요한 시점까지 양적·질적 완화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완화정책 종결도 ECB만큼 불투명하다.
결국 유로존과 일본이 유도하는 달러화 절상을 미국이 감내할 수 있는지가 환율 전쟁 격화 여부를 결정하게 됐다.
◇ 비(非) 유로존, 환율 방어 시동
ECB의 공격적 완화정책은 유럽의 비(非) 유로존 국가에도 경계대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CB가 자산매입을 일시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에 비유로존 회원국이 슬며시 환율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스위스와 스웨덴 등 일부 국가들은 환율 방어를 위해 이미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으며 유로화 유동성이 더 투입되면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가 원치않는 상승 압력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