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연계한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두고 당청 갈등기류가 일단 잠잠해진 가운데, 여야는 이날 본회의를 기점으로 다시 한 번 갈등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여야 갈등 국면에 불을 지핀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병행해 국민연금 수령액(소득대체율) 문제 때문이다.
여야는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하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대에서 50%로 올리기로 했지만, 이를 두고 합의 이틀 만에 여야가 뚜렷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소득대체율 50% 인상 합의 문구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원내대표가 지난 2일 오후 서명한 여야 간 최종 합의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합의문에는 ‘국민대타협기구 및 실무기구의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를 존중하여…'라고 돼 있을 뿐 어디에도 구체적인 수치가 적시되지 않았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와 관련해 “50%라는 숫자는 실무기구 합의안에 들어 있는 숫자”라면서 “여야 대표, 원내대표의 합의문에는 당초 야당이 50%라는 숫자를 넣어왔는데 저희가 반대해서 빠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야당은 실무기구가 마련한 합의문을 여야 대표들이 추인했다는 주장이다.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소속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린 것은 이번 합의의 성과”라면서 여야 합의문에 사실상 반영됐음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 마련을 두고 쓴 소리를 뱉은 것도 여야가 대치 전선을 형성케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여야가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50% 인상 등에 합의한 것과 관련해 “국민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도출 성과에도 불구 국민연금을 ‘끼워 넣기’ 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청와대에서도 ‘월권’이란 불만까지 나오자, 새누리당은 “이는 여야 간 합의사항이 아닌 실무기구의 합의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면서 국민 여론에 따른 사실상의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 원내대표는 4일 “국민연금 제도 변경은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게 대원칙”이라며 “여야 모두 국민에 대한 월권이 있을 수 없다”며 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무성 대표는 “공적연금에 대해 걱정하는 여론이 많은데, 이것 역시 새로 구성될 사회적 기구에서 국가 재정을 고려하면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국민동의를 우선시 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공적연금 개선 방안을 여야가 합의한 만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공적연금 개선방안에 관한 시행 법률을 9월 중 처리하기로 (여야가) 분명히 합의했다”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높여 노후빈곤을 해소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합의사항은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표는 4일 광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하기로 한 여야 합의에 대해 참여정부 때의 국민연금 개혁 방향과 어긋나는 게 아니냐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 국민연금 개혁 때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명박정부 들어 기초연금을 동결하고 박근혜정부 들어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하면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게 된 것”이라며 여야 합의에 따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여야가 이처럼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오는 9월 중 국민연금 개편안이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여야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가 단일안 또는 복수안을 마련해 국회 특위에 제출하면 심의·의결, 올해 9월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회적 기구가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때처럼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 본회의 통과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현재로선 청와대와 복지부 등 정부 측은 여야 정치권이 소득대체율 인상을 말하면서도 과연 ‘누가 재정을 짊어질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비용 부담' 부분을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에 당청은 ‘정부 재정'과 ‘국민 동의'를 전제로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금껏 국민연금개혁 때마다 보험료 인상안이 나왔지만 번번이 물거품이 됐을 정도로 국민 저항은 거셌다. 이런 가운데 여야가 국민연금 개혁 ‘화약고'를 건드린 만큼 향후 소득대체율 인상 합의 과정은 가시밭길이 불가피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