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몰 에비뉴엘 아트홀에 온 앤디워홀 '시크 도도'

2015-04-30 15:43
  • 글자크기 설정

앤디워홀 라이브 프리뷰..5월1~24일까지 대표작 40여점 전시

[잠실 롯데월드몰 6층에 있는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앤디워홀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기자="나는 돈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길을 걸어갈 때, 나는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저기 세상에서 돈이 제일 많은 사람이 지나간다.

 '말은 씨가 된다'.  앤디 워홀이 입버릇 처럼 내뱉은 말은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했다. 1987년 2월 22일 담낭 수술과 합병증으로 사망한 이후 그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부활했다. 생전에도 큰 돈을 번 작가였던 그는 사후에도 여전히 '돈 기계'다.

 워홀의 작품은 '황금 날개'를 달았다. '캠벨 수프'처럼 대량으로 찍어낸 워홀의 판화는 세계 경매시장을 움직인다. 지난한해 전세계 미술 경매에서 워홀 작품만 6000억원어치 이상이 거래되고 있다. 20세기 '최고 작가' 피카소를 제치고 1위에 올라있다.  

일상에 흔해빠진 물건들을 찍어낸 그림은 웬만해선 엄두를 못낼 '비싼 작품'으로 등극했다. 워홀 작품 중 1963년작 ‘실버 크래시 카’는 9400만달러, 한화 1005억에 팔려 최고 낙찰가로 기록되어 있다.
 
 '팝아트 황제'로 등극한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표정일까. 

 
 
       [에비뉴엘 아트홀 쇼윈도우에 설치된 앤디워홀의 초상./사진=박현주기자]

 

 

서울 잠실 롯데 월드몰 에비뉴엘 아트홀이 앤디워홀을 데려왔다.

 “돈 버는 것도 예술"이라던 그는 무슨 생각일까.

 흰색으로 염색한 머리로 유리안에서 빛나는 워홀은 턱에 손을 괸채 도도하고 시크한 포스를 자랑한다. '극사실 조각가' 쓰지 카즈히로가 오마주한 '앤디워홀의 초상' 작품이다.

 주로 국내 경매장에서만 볼수 있었던 앤디워홀의 대표작이 에비뉴엘 아트홀에 걸렸다.  5월 1일부터 앤디워홀의 대표작품 40여점을 전시한다. 특히 30년만에 발견된 아미가 컴퓨터(Amiga Computer) 미디어 아트를 국내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서울 동대문 DDP에서 오는 6월 열리는 '앤디 워홀 라이브 ANDY WARHOL LIVE' (6/6 ~ 9/27)에 출품된 하이라이트 작품을 모아 선보이는 자리다.

작품을 대여해준 앤디워홀 에릭 샤이너 미술관장은 "이번 전시 작품들은 앤디워홀 미술관의 컬렉션중에서 특별히 고른 진품들"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학생들이 워홀의 작품을 가까이서 감상함으로써 창작열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에비뉴엘 아트홀 전시에는 워홀의 사진들과 1950년대 초 뉴욕 시절의 드로잉 작품, 1960년대 스크린 프린트 기법으로 제작한 마릴린 먼로, 마오쩌둥, 믹 재거, 무하마드 알리, 요셉 보이스 등 유명인들의 초상화(Portrait)에서부터, 달러 사인 시리즈, 캠벨 수프 시리즈,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재해석한 작품, 1980년대 워홀과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가 콜라보한 작품까지, 앤디 워홀의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워홀이 만든 영화 ‘엠파이어(The Empire)’도 상영한다. 전시는 5월 24일까지.관람은 무료. 02-3213-2606
 
[롯데 월드몰과 에비뉴엘 면세점 통로에 앤디워홀 광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박현주기자]
 

 

 

 

 

[ㅇ]

▶앤디워홀="줄지어 늘어선 캠벨수프를 보고 떠오르는 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릴적 추억이 거기에 있다. 나는 20년간 매일매일 캠벨수프를 점심으로 먹었다."

  1928년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의 슬로바키아 이민자 가정에서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금발에다 허약했고, 걸핏하면 아팠다. 아홉 살 때는 희귀병인 무도병에 걸려 2개월 동안 집에서만 지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애지중지했으며 만화책, 색칠하기 책, 영화잡지 등을 사주었는데, 그것들 모두 훗날 앤디 워홀의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1949년, 졸업 후 뉴욕에 진출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 등을 통해 상업미술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1962년 시드니 제니스 화랑의 전시가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그의 독특한 외모와 스스로를 변장하는 기이한 행동이 더해져 워홀은 일약 뉴욕의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남긴 명언은 현대미술가들을 자극한다.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 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