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가해자는 누구인가?"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다. 1965년 3월 10일 비둘기부대는 인천항을 출발해 3월 16일 사이공에 도착, 지안에 주둔해 건설 지원임무를 수행한다. 그 후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창설, 채명신 소장을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청룡부대가 1965년 10월 9일 깜란에 11월 1일에는 맹호부대가 뀌년에 상륙한다.
미군은 직접 원주민과 마주치는 마을에 대한 수색작전을 기피해 마을수색은 주로 한국군에 맡겼다. 한국군은 전과를 올리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수행하고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베트남정치국 전쟁범죄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남부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자 수는 5000명으로 추정되며 연구자들은 9000명 정도로 보고 있다.
베트남전쟁 참전은 한국 정부가 먼저 제안하고 미국이 승인하여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한국의 군사독재는 더욱 강화됐고, 사회 전체가 병영사회가 됐다. 즉, 전쟁은 정당화됐다. 참전 군인들은 전쟁의 대가로 돈을 벌고 그 결과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고엽제로 인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렇듯 베트남 전쟁은 복잡한 의미를 갖는 전쟁이다. 한국에게 있어 베트남전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전쟁이었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해방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이 두 개의 정당한 대의가 서로 충돌한 불행한 전쟁이었다.
지난 8일 '전쟁의 진실'을 알리려 한국을 찾은 응우옌떤런(64)씨와 응우옌티탄(55)씨는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헤집어 놓은 전쟁이 한국에선 ‘기념’할 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사실 베트남 곳곳에 한국군을 ‘증오’하는 60여개의 증오비가 세워져 있는 것과 달리, 한국 땅 도처엔 100여개의 참전 기념비가 있다.
이런 전쟁에 대한 시각차를 보여주기 위해 이재갑 사진 작가는 광복 70년, 베트남전 종전 40년을 맞아 현재 서울 종로구 견지동 사단법인 평화박물관의 갤러리 ‘스페이스99’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 작가는 "한국에선 베트남 참전을 ‘기념’하고 있다. 한국이 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베트남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라리 미군에게 당했으면 보상이라도 받을 텐데 한국군의 만행이 저주스럽다는 베트남 피해자들의 증언은 우리의 양심을 짓누른다. 그 진실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헤쳐나가야 할 지는 우리에게 남은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