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비를 연상시킬 만큼 장방형으로 된 거대 시멘트제단 위에 흐릿한 큰 글씨로 ‘CAN THU’라고 쓰여 있다. 베트남어로 ‘CAN(깐)’은 ‘한(恨)’이란 의미이며, ‘THU(투)’는 ‘복수’나 ‘원수’의 ‘수(讐)’를 뜻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손들에게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들이 우리를 포탄구덩이에 몰아놓고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말을 기억하거라’란 자장가를 불렀다.
이러한 사실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반호아에 머물며 '반호아'란 소설을 쓴 영국 작가에 의해서다. 이 영국작가는 소설을 쓰고 그 수익금으로 422명의 희생자 명단을 새긴 위령비를 세웠다.
한국에선 1999년 당시 호찌민 시에서 공부하던 구수정 씨에 의해 언론에 알려졌고 이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에서 지원 의사를 밝혔으나 반호아 마을 사람들은 한국인의 마을 접근은 물론 온정을 거부했다.
근현대사 속에서 우리가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적극적으로 피해를 입힌 사건이 있다면 단 하나, 베트남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조사나 발표는 없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달리 아직도 베트남 전쟁을 마무리 짓지 못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우리는 베트남전에 대한 일말의 부채감도 없이 40년을 흘려보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얼마전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들은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아들을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베트남은 적대국이어야 하지만,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베트남이란 나라를 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과거사를 언급했다. 그러나 표현은 어정쩡했다.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양국이 불행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던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였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지 모호하다.
이에 베트남 트란 둑 루옹 주석은 "과거는 뒤로 미루자"고 했다. 이해한다거나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들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군의 학살을 인정한 미군의 공식 조사와 희생당한 민간인, 생존자들의 증언이 있지만 병사들의 뒤늦은 참회와 고백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사와 관련해 우리는 종종 역사를 철저히 청산한 독일을 거론하며 과거사의 굴레를 벗지 못한 일본을 비난하곤 한다.
베트남전 관련 단체들도 ‘명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백만 명을 학살한 독일이 오늘날 수십만 명을 학살한 일본보다 국제적으로 더 두터운 신뢰를 받는 이유가 그것이다.
동남아 지역학을 연구하는 한 전문가는 "과거사를 처리하는 그 철저한 방식이 오늘날의 독일을 이끈 것"이라며 "참회와 사과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명예"라고 말했다.
어느 민족이든 역사적 과오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오를 부정하는 것은 미래에도 똑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종군위안부의 존재나 남경대학살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베트남전에 대한 참회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