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말 출근. 건물 주차장에는 이 날도 승용차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양한 사정은 있겠지만 주말 출근자들은 기자와 마찬가지로 평일에 소화하지 못한 업무를 보충하고, 돌아오는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출근한 이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실에서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인 지난 1981년 2월 25일자 서울신문에 기고한 ‘새 봄을 기다리며’가 생각나 꺼내 읽어봤다.
산업부 취재기자로 일하면서 이 글을 접한 뒤 매년 봄이면 반복해서 읽고 있는데, 해가 갈수록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글 하나는 꼭 쓰고 싶다”며 누구를 시키지 않고 아산이 직접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해 만들었다는 이 글 속에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업인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 정서가 솔직하게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한 가운데에 내던져진 기업인들로서는 계절을 만끽하는 여유가 사치일 수밖에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뒤로 한 채 사무실이라는 ‘혼미한 어둠 속’에서 성공의 희망을 도모하고 있다. ‘놀 땐 놀고 일 할 땐 일 하자’며 선진국에 비해 터무니하게 긴 한국의 노동시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야근 또는 철야근무에 주말과 휴일을 반납해가며 노력한 숨은 영웅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2015년 봄도 기업인들에게는 이렇게 일상의 하루로 지나가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올해 봄은 기업인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어려운 위기의 시기라는 것이다. 힘든 상황은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접할 때마다 힘들다.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에 따른 더딘 경기회복세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비용통제와 체제개편 등 마른수건 짜내기식으로 살아남은 기업들은 이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자’는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춘 사업 구조개편에 모든 정력을 쏟고 있다. 이번에 실패하면 정말로 기업은 망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살아남기에도 빠듯한 지금.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들에게 고용과 투자확대를 압박하면서 부패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수사를 지속하고 있다. 사실상 공포정국이다. 이로인해 기업인들은 ‘혼미한 어둠’에 스스로 몸을 감춘 채 바짝 머리를 숙이고 있다. 봄은 왔지만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지금은 봄이 아니다.
‘기업의 단하에서 봄을 만끽하고 싶다. 경제단상에서 호기 있게 일하는 연출자들의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심정에 여유를 가지고 이 봄을 즐기리라’라는 아산의 기대, 기업인들의 소망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지. 누구도 그 때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