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빈은 모델 출신 배우로 지난 2011년 KBS2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데뷔했다. 드라마 ‘큐피드 팩토리’ ‘뱀파이어 아이돌’ ‘신사의 품격’ ‘학교 2013’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빼앗으며 인지도를 쌓았다. 지난 2013년 ‘왕관을 쓰려는자, 그 무게를 견뎌라-상속자들’로 스타덤에 올랐다.
안방극장에서의 인기는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영화 ‘친구2’(감독 곽경택·관객수 297만 1400여명)와 ‘기술자들’(감독 김홍선·관객수 256만 3800여명)에서 연달아 흥행 홈런을 쳤다. 300만도 안 되는데 홈런이라 평가하는 건, 업계의 예상 관객 수를 넘긴 수치였고 배경에는 김우빈의 티켓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고독감이나 무게감이 드리운 역할을 주로 소화했던 김우빈은 지난달 25일 개봉한 ‘스물’(감독 이병헌·제작 영화나무·아이에이치큐)에서는 무척 가벼워졌다. 19금 대사를 경쾌하게 날리는 코믹연기로 관객들의 배꼽을 훔쳤다. 지난달 3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여자를 밝히는' 혈기 왕성한 치호 역의 김우빈을 만났다.
▷ 제 장면은 빨리 지나가길 바랐어요. (강)하늘이와 (이)준호의 연기가 좋았죠. 현장에서 보긴 했지만 미처 못 본 장면들이 있으니 영화관에서 봤는데…, 두 번이나 봤지만 제 연기를 제가 보기는 힘이 들었어요.
▷ 여태껏 만족한 작품이 없어요. 항상 아쉬움이 남죠. ‘저 장면에서는 왜 대사를 저렇게 처리했지?’라는 자책감이 들어요. 선배님들께 자신의 작품을 편히 볼 수 있으신지 물은 적이 있는데요, 오래 연기하신 분들도 아쉬움은 남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마음가짐이 연기자로서 오랜 생명을 유지하는 비결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보다 준호랑 하늘이가 중심을 잘 잡아줘 다행이라 생각해요.
- 이병헌 감독과 첫 작업인데 어땠나.
▷ 이병헌 감독은 천재가 분명해요. 제작진도 완벽한 프로들이었고요. 저희 셋은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며 연기했어요. 앵글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었을 텐데 그걸 귀신같이 담아내셨더라고요. 감독, 시나리오, 제작진, 삼박자 모두가 맞아떨어진 현장이었습니다.
- ‘스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한 ‘스물’을 보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았죠. 스케줄상 출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찍고 싶었어요. 하면서, 하고 난 뒤에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웃었던 현장이 없어요. 촬영 기간을 24시간으로 친다면 22시간은 웃은 것 같아요. 기술적인 NG보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얻어 행복해요. 하늘이와 준호처럼, 또래가 아니었다면 이보다는 덜한 작품이 나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친구들한테 감사해요. 단체 카톡방이 있는데 매일 수다를 떨어요. 서로 배우로서 추구하는 바, 생각하는 게 비슷하고, 배려심도 깊어요. 운명적인 만남인 것 같습니다(웃음).
▷ (웃음) 보통 한 대사당 5~6개의 버전을 준비하는데 야한 대사는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10개 이상 아이디어를 짜냈죠. 감독님께 전부 할테니 카메라 돌리시라고 했고요. 더 변태스럽게 하거나 애교스럽게, 더 센 버전도 있었는데 가장 노멀한 연기를 선택하셨어요.
-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소소반점의 사투였다.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의 노래 ‘위드아웃 유’(Without you)를 배경으로 펼쳐진 독특한 코믹액션이 압권이었다. 현장은 어땠나?
▷ 그 장면은 할 말이 많아요. 배우들은 가만히 있고 카메라가 도는 장면 있잖아요, 실제로 배우들이 그대로 멈춘 거예요. 어떤 기술적 처리가 아니고요. 숨도 못 쉬었어요. 보통 그런 신은 수 십대의 카메라가 동원되는데 우리는 인력으로 해결했고요(웃음). 가장 재미있던 촬영이었어요. 그 장면만 5일을 찍었는데, 아이디어를 내면서 만들어 갔어요. 하늘이가 발차기 하는 장면은 와이어를 달고 찍은 건데 정말 고생 많이 했죠.
▷ 치호와 비교하자면 밝은 모습은 비슷한 것 같아요. 치호처럼 센 멘트나 ‘섹드립’은 하지 않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 보이는 에너지가 비슷해요. 행동으로 치면, 혼자 있을 때 '멍 때리고' 있는 게 비슷해요. 손에는 시나리오를 들고 있지만 그냥 상상을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치호한테 공감하기 쉬웠어요. 치호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는 인물이라고 설정했지요.
- 김우빈의 스무 살은 어떤 기억으로 남는가.
▷ 원하던 모델학과에 들어가 신이 났었어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는 생각에 설렜죠. 보통 대학에서 술자리가 많은데 저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어요. 1년에 5번 정도 참여했던 것 같아요. 기숙사 생활을 했고 학교 연습실에서 살았어요. 학교에 ‘쇼’ 장이 있어 워킹연습도 하고 밤새 과제도 했죠. 치호랑은 정반대네요(웃음).
-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지금이 딱 그때인 것 같다.
▷ 감사해요, 좀 더 신중하게 되고요. 더 잘 맞는 옷을 찾으려고 하는데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아 고민이 많아져요. 보여 드리지 못했던 연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이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